다정도 병인가
다정도 병인가
  • 제주신보
  • 승인 201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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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위원

‘이화(梨花)에 월백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고려 말 임금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이조년(1269∼1343)의 ‘다정가(多情歌)다. 이 시는 고려 시대 시조 중에서 가장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배꽃에 하얀 달이 비추고 은하수가 자정을 알리는 때에, 한 가지의 봄날의 마음을 두견새가 알까마는 정이 많은 것도 병인 양 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퇴계 이황이 고려 500년사에 제1의 인물이라고 평한 충신 이조년의 형제 이름이 특이하다. 5형제 중 첫째가 백년(百年), 둘째 천년(千年), 셋째 만년(萬年), 넷째 억년(億年), 그리고 조년(兆年)이다. 5형제 모두 문과에 급제했고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다고 한다.

▲다정가(多情歌)에서 정(情)이 있는 것은 사실 자규인 두견새뿐이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생물과 무생물로 나눈다. 생물은 또한 동물과 식물로 나눈다. 동물은 움직이면서 성장하고, 식물은 제자리에서 성장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표준 대사전은 식물과 무생물을 동일시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감정 유무에서다. 식물은 돌이나 쇠, 플라스틱과 같은 무생물처럼 무정 명사에 포함된다. 사람이나 개, 고양이 등은 감정이 있는 유정 명사다. 그래서 ‘사람이 나무에게 물을 줬다’라는 말은 문법적으로 틀렸다. ~에게는 유정 명사에 한정된다. 무정 명사에는 ~에로 써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나무에 물을 줬다’라고 해야 한다.

‘나무에게 편지를 띄우다’, ‘장미에게 그리움을 보내다’라는 표현은 시적으로는 가능해도 문법적으로는 틀렸다는 얘기다.

▲다정가의 첫 소절이 ‘배꽃에 하얀 달이 비추고’인데 배꽃에 감정이 없다니, 배꽃은 억울하겠다.

중국 윈난성에는 춤추는 꽃인 무초(舞草)가 있다. 콩과 식물인 이 꽃은 노래를 틀어주면 춤을 춘다. 물론 소리 신호체계를 통한 팽압 운동에 의해 잎이 움직이는 것이다.

팽압 운동은 식물체 내의 물의 이동에 따라 세포속의 압력이 변해 생기는 현상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나무나 꽃이 서로 신호체계를 갖고 연락한다고 한다. 특정한 신호로 위험을 알리기도 하는 것이다. 감정이 없으면 배려심도 없는 법인데.

사람의 능력이 모자라 식물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여름이 절정으로 가고 있다. 향기와 그늘을 주는 꽃과 나무가 고마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