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에서 유월 사이
오월에서 유월 사이
  • 제주신보
  • 승인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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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희 수필가

벌써 사십여 년 전 일이다. 요맘때쯤이면 “멜 들었져.”하고 외치는 소리와 함께 동네 사람들이 바다로 뛰어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손에는 ‘족바지’라고 부르는 뜰채와 대나무로 짠 구덕을 들었다. 외할아버지 댁 뒤에는 넓은 갯바위가 펼쳐져 있다.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시각, 갯가에는 벌써 많은 사람이 멸치를 줍고 있었다. 크고 통통한 놈 몇 개만 주워도 두 손에 가득했다. 햇볕이 강렬해지면서 사람들은 갯가에 솥을 걸어놓고 바닷물에 멸치를 삶아 말리느라 분주하다. 남자 어른들까지 바지를 걷어 올려 점잔을 벗어 버린다. 여기저기서 멸치 삶는 냄새가 구수하다.

아이들은 뭔지 모를 즐거움에 덩달아 뛰어다니며 깔깔대며 웃었다. 그때의 즐거움과 풍요로움을 무엇에 견줄까. 자연이 주는 만족은 인간이 주는 것과 사뭇 다르다.

며칠간 바다와 거리가 먼 곳에 사는 친척들에게 말린 멸치를 나누어 준다. 외할아버지의 형님을 큰할아버지라고 불렀는데 우리 형제들은 그 댁에 먼저 가려고 했다. 무엇을 가져갈 때마다 오 원짜리 동전을 자주 주셨기 때문이다. 일 원짜리 젤리를 다섯 개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갓 삶은 멸치는 베지근한 맛이 난다. 그렇게 말려 장만한 것을 항아리에 담아놓고 먹었다. 된장국의 국물을 우려내는 데도 요긴하게 쓰였는데 절구에 찧어 가루를 만들어 썼다. 이른 저녁 후에 입이 궁금할 때 간식으로 먹기도 했다.

한번은 해수욕장에 쥐치가 가득 밀려왔다. 어른들 말에 의하면 어선이 난파했다고 했다. 쓸어 담을 정도로 많았는데 사람도 그만큼 많았다. 집에서 소금물에 삶아 바싹 말렸다. 쥐치조림도 며칠을 질리게 먹었다. 지금도 쥐포를 보면 그때의 풍요로움이 떠올라 값진 손 키스를 하고 싶다.

옛날의 바다는 씨 뿌리지 않고 거둬들이는 곳이었다. 계절에 따라 먹을 것을 내는 땅과 다름없었다. 여름날 조무래기들이 수영 실력을 뽐낼 때 파도는 성내는 것을 슬쩍 미루어 두었다. 물놀이를 끝내고 저녁 반찬거리로 게를 쇠꼬챙이에 잔뜩 꽂아 집으로 돌아갈 때 바다를 향해 고맙다고 눈인사라도 할 걸, 그때는 그걸 몰랐다.

며칠 전, 아침 운동을 다녀온 가족이 멸치를 그릇에 수북이 부어 놓고 나를 불렀다. 너무 뜻밖이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해안도로 바닷가에 하얗게 밀려와 파닥이고 있더란다. 목에 둘렀던 넥워머의 한쪽을 묶어 담아 온 것이다. 밀려온 멸치는 많은데 줍는 사람은 몇 안 돼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즐겁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옛 추억이 떠오른 것이다.

얼갈이배추를 넣고 멜국을 끓였다. 쌉싸래한 맛이 옛날 그 맛이다. 나머지는 소금에 버무려 젓갈을 담갔다. 여름에 콩잎 쌈을 먹는 데 귀하게 쓰일 것이다.

제주살이를 시작한 분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다. 오늘 아침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일 아침에 가 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흥분하여 당장 가보자고 한다.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바닷가에 허연 부분이 있다. 그때까지도 멸치가 바닥에 많이 깔려 있었다. 마침 썰물이라 금방 비닐봉지 하나를 가득 채웠다.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온 세월이 오십 년이 넘었다. 바다가 키운 생물을 사람이 먹는 것은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라는 것을 왜 이제야 느낄까. 흰 머리가 생기면서 철이 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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