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식(貨殖·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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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사마천의 화식열전(貨殖列傳)은 사업가들의 성공스토리다. 춘추시대 말기부터 한나라 초기까지 상공업으로 부를 쌓은 52명이 등장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월나라의 정치가 범려다. 그는 월왕 구천의 책사로서 오월쟁패(吳越爭覇) 때 ‘와신상담’이란 고사성어를 남기기도 했다. 정치를 뒤로하고 대부호가 되자 가난한 벗과 일가친척에게 세 번이나 흔쾌히 베풀었는데, 여기서 ‘삼취삼산(三聚三散)’이란 말이 나왔다. 그의 스승은 계예(計倪 또는 계연 計然)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에 관한 기록은 없다.

백규(白圭)도 열전에 나온다. 그는 시세 변동을 살피는 데 귀재였다. 풍년과 흉년이 순환하는 이치를 살펴 물건을 사고팔았다. 막대한 부를 일궜지만, 검소했고 일꾼들과 결실을 나눴다.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 서유구(1764~1845)의 ‘임원경제지’ 가운데 ‘예규지(倪圭志)’가 처음으로 완역됐다는 소식이다. 예규지는 앞서 소개한 계예와 백규에서 따온 말이다. 이에 미뤄보면 재테크 서적임을 알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재산 증식에 대한 몇 가지 팁도 담겨있다.

“상인은 공정과 성실이 으뜸이다. 속이는 장사는 보탬이 안 된다. 돈을 빌려줄 때 이자는 적당해야 한다. 돈이나 식량을 많이 빌려주지 말라. 재산을 금은보화로 보관만 하지 말라. 부동산을 거래할 때는 법대로 해야 후환이 없다. 채무자의 땅을 술책으로 빼앗지 말라. 자손에게 재산을 고루 나눠줘라. 수입의 70%는 지출하고 나머지는 저축하라. 목돈 드는 집짓기는 신중히 하라.”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진부하지도 않고, 공허하지도 않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 차별이 심했던 시대에 금수저 출신으로 전라감사와 이조판서를 지낸 이가 돈을 스스럼없이 논한 것이다. 40대 중반에 벼슬에서 물러나 향촌 생활을 시작한 그는 그동안 쟁기 한번 잡아보지 않고 음식만 축낸 자신을 반성하며 예규지 서문에 이렇게 썼다. “사대부는 스스로 고상하다고 표방하며 으레 장사를 비천한 것으로 여기니 참으로 고루하다.”

▲재테크에 있어 가장 경계할 일은 낭비만이 아니라 지나친 인색함이다. 화식열전과 예규지에 나온다. 여유 계층에선 소비해야 이웃들도 입에 풀칠할 수 있다.

작금은 모두가 호주머니 열기를 두려워하고 있어 걱정이다. 국내외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각자도생에 내몰리고 있다. 먹구름이 걷혀 고전의 메시지가 빛을 발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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