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내려야 무지개가 찬란하게 뜬다
소나기 내려야 무지개가 찬란하게 뜬다
  • 제주신보
  • 승인 2019.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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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시인·수필가·前 애월문학회장

여름은 소나기의 계절이다. 여름에는 소나기와 작렬하는 태양과 몸을 까맣게 그을리게 하는 뙤약볕이 있다. 몇 번일지 알지 못하는 폭풍우와 태풍에 맞서 이겨내야 풍요로운 가을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여름철 쏟아지는 빗줄기는 소설가 황순원의 대표작 ‘소나기’를 생각하게 한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중학교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게재 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아마 없을 듯하다. 한 소년의 애틋하고 아름다운 첫사랑 이야기가 여름 농촌 풍경을 배경으로 이뤄져 있어,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이면 문득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와 나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있는 듯 행복한 심사에 젖어든다. 책 속에 소년이 소나기를 맞자 입술이 파래지며 몸을 떨는 소녀에게 비를 피하게 하는 쇠락한 원두막, 개울가, 물장난, 조약돌, 징검다리, 텃논, 가을걷이, 허수아비, 새끼줄, 참새, 송아지, 초가집, 비안개, 먹장구름 등 이런 낱말들이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필자의 어린 시절 고향은 제주에서 보기 드물게 물이 굉장히 풍부하여 도내에서는 논밭의 면적이 제일 넓었고 논농사를 많이 지었다. 물이 항시 흘러 무논이 있고 수박, 참외밭 원두막이 있는 곳에서 보냈다. 무수천에는 오염되지 않는 맑고 차가운 물이 있어 멱을 감고, 여름철의 참외서리와 수박서리는 고향 친구와 함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즐거운 추억거리다. 여름방학 때는 논두렁길을 걸으며 개구리, 메뚜기를 잡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때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빨리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차가운 빗줄기에 온몸이 다 젖고 나면 왠지 시원한 느낌이었다.

요즘은 길을 가다가 소나기를 만나면 남녀노소 막론하고 얼른 피한다. 하필이면 내가 길을 갈 때 소나기가 퍼붓나 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갖는다. 소나기를 내게 찾아온 어떤 불운이나 고통의 한 부분으로 여긴다. 그렇지만 비가 오지 않는 하늘은 없다. 비가 오지 않으면 오색찬란한 무지개는 뜨지 않으면 하늘은 아름답지 않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에 하늘은 맑고 태양은 더욱 빛난다. 소나기가 왔기 때문에 무지개가 떴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왜 인생에 불행의 소나기, 고통의 소나기가 퍼붓느냐고 원망한다. 그러나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그 고통에 맞서는 편이 낫다. 어릴 때 소나기 속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던 것처럼 비록 고통의 소나기가 퍼붓는다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승화시킬 수 있는 슬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고통은 생기와 활력을 주는 내 삶의 소중한 영양소가 될 수 있다.

소나기는 온다 하더라도 하루 종일 오는 것은 아니다. 오다가 반드시 그치기 때문에 소나기다. 그래서 내 인생의 소나기, 그것이 비록 고통의 소나기라 할지라도 피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삶에는 생로병사의 문제가 반드시 일어나게 돼 있어서 아무리 고통이 찾아오지 않기를 원해도 살아 있는 한 결코 피할 수 없다. 오히려 고통이 찾아오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살아가면서 마주칠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고통의 소나기라 할지라도 소나기가 내려야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오색무지개가 뜬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