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동행,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 제주신보
  • 승인 2019.07.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영희 수필가

병실에서 겪은 일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게 했다. 병상을 마주 보고 누워 있는 분은 망백을 넘긴 환자였다. 간병인이 없는 날은 성치 못한 몸으로 노부인이 병시중을 했다. 하루에 몇 번씩 기저귀를 갈거나 욕창이 생길까 몸을 돌려 뉘고, 식사 수발까지. 아침이면 더운물에 수건을 적셔 온몸을 닦아 드리고, 면도까지 잠시 쉴 틈이 없었다.

부부란 무엇인가. 우리는 서로 어떤 존재로 살아왔나. 그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소용돌이처럼 갈등과 의문이 들었다. 남편의 전부를 속속들이 다 안다고 생각하다가도 생판 모르는 낯선 사람처럼, 속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피를 나눠 얻은 자식이 둘을 엮는 끈이 되었을 뿐, 돌아서면 흔적 없는 무채색일 것 같다.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 맺어졌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뒤돌아 가고 싶었던 순간이 왜 없었으랴. 그 마음이 나만도 아닐 것이고. 상대도 그러할 것이란 생각이 들면, 곧 자신의 거울 같아 속내를 들킨 듯 얼굴이 붉어졌다.

혼자 몸도 감당하기 힘든데 배우자의 치다꺼리에 숨차다고 호소하는 노년이 많다. 둘만의 단출한 생활인데도 몸이 예전만 못해 짜증만 늘어 티격태격 다툼이 잦고, 서로 고집만 부린다고 답답해한다. 그래도 믿고 의지할 사람은 남편이요, 아내라는 점엔 이견이 없다. 자식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 때, 결국 부부뿐이라는 생각도 한결같다. 부부 생활은 가장 어려운 수행이라 한다.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한 동행이 된다.

수술로 해쓱해진 남편 모습에 마음이 착잡하고 복잡했다. 거칠 것 없이 뜨거운 열정으로 젊음을 보냈던 시절이 언젠가. 홀로 될 삶이 곧 현실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예단. 예고 없이 찾아올 그날, 남은 자의 힘겨운 생활이 그린 듯 보였다. 자식과 함께 산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아직까진 짐으로 얹히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혼자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지. 품위를 잃지 않고 초라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삶, 이제부터 진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남편에게 넌지시 건넸다.

깊은 우물처럼 가라앉은 수술실 앞 대기실에서 여섯 시간의 기다림은, 후회와 자책으로 얼룩진 시간이었다. 남편의 그늘이 품고 있는 내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살아오는 동안 그렇게 긴 시간을 초조와 두려움으로 보낸 적이 없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수술 진행 과정이, 모니터에 오르내리는 자막에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걸핏하면 남편에게 최선을 다해, 당신에게 헌신적이었다고 버릇처럼 공치사를 해 왔다. 마치 혼자 일방적인 희생으로 살았던 것처럼 섭섭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었다.

공교롭게도 우리 부부는 잇달아 병으로 고생을 했다. 성치 못한 몸으로 서로 위로하며 병과의 동거도 순리로 받아들이며 사는 게 늘그막 삶이라 다독였다. 금슬이 좋아 병까지 같이한다는 주위의 우스갯소리에, 이젠 마주 보며 웃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함께 가고 있는 길 종착역은 어디쯤일지. 하루가 소중하고 아까운 시간이다. 서로 더없이 좋은 동반자로, 힘들 때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는 버팀목이었다. 네 탓 내 탓하지 말고 너그러이 품어 안고 살자. 곁에 있어 함께 늙어 간다는 것만도 감사할 일이요, 둘을 잇고 있는 인생 완주로 가는 길 위 아닌가. 농익은 과일처럼 익다 어느 날 함께 꼭지가 떨어지는 복이라도 주어진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