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여 피어나라
자유민주주의여 피어나라
  • 제주신보
  • 승인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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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 최규일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를/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 하리라.’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에 새겨진 비문이다. 옷깃을 여며 향로에 향을 사르며 호국영령과 순국선열께 머리 숙여 묵념을 올리다. 방명록에 ‘조국 평화 통일’로 적고 현충문을 나오면서, 2번 사병 묘소 앞에 있다는 채명신 장군 묘를 찾아 절을 한 뒤, 묘비를 보니 비명이 인상 깊다.

“그대들 여기 있기에 조국이 있다.”

“Because you soldiers rest here, our country stands tall with pride.”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그토록 조국이 간절하여 생사를 같이한 전우와 함께 조국 품에 안겼으니, 저도 「현충원 참배기」로 염원합니다.

‘내가 어디 있든/ 내가 어디 가든 / 내 마음은/ 내 조국에 있다.’

동포여, 학문에는 국경이 없지만 학자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비석에 새긴 ‘民主主義’ 휘호를 보고, ‘자유민주주의여 피어나라!’를 방명록에 남기다. 여기 ‘자유’는 들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들판에 꽃을 심는 자유이다. 풀잎 같은 자유이다. 생각(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인권의 자유다. 이러한 자유는 백성이 주인인 민주주의 나라에서만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그런데 어느 대통령 묘소에서 이상야릇한 장면을 목격했다. 묘 주위를 바라보니, 군데군데 움퍽 파지고 잔디가 누렇게 변해 시들어갔다.

묘소에 경비관리인과 아주머니 두 분이 계시기에 의아스러워 “왜 저러느냐?”고 물었다. 경비관리인이 “이곳은 국방부가 관리한다면서, 핀을 뽑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아주머니 한 분은 “곳곳에 쇠말뚝이 70여 개나 박혀있다”고 했다.

누가, 언제, 왜 쇠말뚝을 박았을까? 무슨 원한과 증오와 저주이기에 저런 짓을 했을까?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 하리라’는 현충탑의 글귀가 무색하다.

국가보훈처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허술한 현충원의 ‘보호’와 나라의 ‘안보’에 ‘유비무환(有備無患)’이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 민족은 흔히 한이 많은 한민족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한(恨)을 한(恨)으로 풀지 않는다.’ 슬기롭게 홍익인간으로 한을 푼다. 사랑으로 보듬어야 한다.

1967년 12월 월남에서 전사한 아재(당숙) 묘비 앞에 서니 감회가 어리다. 집안에 동갑내기 아들 세 명이 같이 자라다가 당숙은 월남에서 전사하고, 막내숙부는 월남에 갔다 왔다. 명절 때 종조모님을 찾아뵙고 인사하면 “너희 둘은 살아 있는데, 내 아들은 죽었으니 내 신세가 박복하구나.”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이국땅에서 아재와 함께 전사한 전우여! 꿈결에서나마 보실 건가. 그리운 임이여! 누군들 별빛 같은 그리움이 없겠는가. 매년 돌아오는 봄이면, 현충원 앞마당에 피어나는 라일락 향기가 그대를 떠올리게 하리라.

현충원에 새겨진 비문들을 읽으니, 무슨 이름으로 어떤 이름을 남기고 가야 하나.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虎死留皮, 人死留名)는데. 사후의 이름값을 곰곰이 새기다. 그 이름도 고울세라. 자랑은 높으고저, 뜻은 멀고저. 한결같이 뻗어날 대한민국이여!

나라를 지키고자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이시여, 순국선열이시여, 무명용사들이시여! 손 모아 비나이다. 부디 고이고이 잠드소서. 이 땅 이 나라를 길이길이 지켜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