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미국처럼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 제주신보
  • 승인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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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택, 前 탐라교육원장·수필가

요즘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 영공을 휘젓고, 동맹국 미국은 시큰둥하고,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들어 경제 보복으로 맞서고 있다. 북한은 연이어 미사일을 쏘아 대며 무력시위를 하고, 법무장관 후보자는 각종 비리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진영논리의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지난달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쉬이 이루어질 것 같지도 않고, 그런 희망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평등 공정 정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경제가 무너지고, 안보가 불안하고, 나라가 너무 흔들리고 있어 걱정스럽다.

며칠 전 법무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로 온 나라가 출렁거리고 있다. 그는 교수 시절 공정과 정의, 법과 원칙을 강조했다. 그런데 그 말이 부메랑이 되고 있다. 남에게는 엄격한 양심의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럽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아야 한다. 법보다 무서운 것이 도덕적 가치다. 허울 좋은 탈을 쓰고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 신문 기사에서 워싱턴 참전용사 행사에 한국인 K양이 보고 느낀 소감을 쓴 글이 눈길을 끌었다.

미국인들은 참정용사들에게는 어딜 가나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극진히 대접을 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전쟁 영웅이 타고 있다’란 종이판을 앞 유리창에 붙인 버스가 공항에서 출발해 도로에 들어서자 경찰차가 버스를 호위했다. 막히는 길에선 앞서 가던 차가 모두 가장자리로 붙어 길을 터 주었다.

우리가 이와 비슷하게 이동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미국인이 이토록 열렬히 참전용사를 존중하는 이유가 궁금해 물었다. 이들은 ‘목숨 걸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으니까’라고 했다. 그들이 희생하지 않았다면 우리와 당신 나라에 자유가 보장될 수 있었을까요.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운 분들께 당연히 존경을 표해야 한다. 그리고 반문을 한다. ‘한국도 우리처럼 참전용사를 존경하지 않나요?’라고.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싸웠는데, 우리와 미국이 너무도 다르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복지수당과 일자리 창출이란 명목으로 세금을 마구 쏟아 붓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희생된 참전용사들에게는 찬밥 신세다. 내년부터 장병 월급이 54만 원으로 인상된단다. 그런데 상이용사 7급 보전수당은 고작 45만 원에 불과하다. 병장에도 못 미치는 수당을 받으며 고통 속에서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다.

4·3평화공원과 5·18공원에 간 적이 있다. 수십만 평 대지에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호국영령들이 잠들고 있는 99골 충혼묘지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나폴레옹은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자는 이미 패배한 자’라고 했다. 이제 참전용사들도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나라를 지키다 먼저 간 호국영령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힘을 모아야 한다. 가만히 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것은 무능이요 무지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서라도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