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4·3유족 아픔 담긴 사진 기증
팔순의 4·3유족 아픔 담긴 사진 기증
  • 좌동철 기자
  • 승인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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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리 예배당 헌당식 사진…봉개마을 재건 시 지명마저 바꿔버려
김춘자씨가 기증한 1949년 9월 14일 촬영된 함명리 예배당 헌당식 사진.
김춘자씨가 기증한 1949년 9월 14일 촬영된 함명리 예배당 헌당식 사진.

제주4·3의 비극을 간직하고 살아온 유족이 4·3의 전개과정을 보여주는 사진을 기증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4·3유족인 김춘자씨(80)70년간 간직해 온 사진 6점과 성금 100만원을 기탁했다고 9일 밝혔다.

김씨가 기증한 1949914일 촬영된 함명리 예배당 헌당식 사진은 마을 이름조차 바뀔 정도로 주민들의 희생과 고통을 감내해야했던 아픈 기억이 담겨있다.

19492월 제주시 봉개마을을 초토화시킨 장본인인 2연대장 함병선(咸炳善) 대령과 작전과장 김명(金明) 대위는 나중에 마을이 재건되자 자신들의 이름을 조합, 지명을 함명리(咸明里)로 바꿔버렸다.

4·3 유족 김춘자씨.
4·3 유족 김춘자씨.

중산간에 있는 봉개마을은 가옥이 불에 타면서 오갈 데 없는 주민들은 낮에는 야산에서 밤에는 불타버린 집에서 생활을 반복했다. 194924일 토벌대는 박격포까지 동원해 대대적인 토벌을 벌여 300여 명의 주민이 희생되고 마을은 잿더미가 됐다.

삼양·화북 등지로 피난 갔던 봉개리 주민들은 19497월 재건 명령에 따라 성담을 쌓고 함바집을 짓고 살았다.

2연대는 제주 철수를 앞두고 해안지역에 소개됐던 주민들을 원 거주지로 복귀시키는 선무공작을 펼쳤다. 봉개리를 시범적으로 재건한 함병선 대령과 김명 대위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이 함명리로 바뀐 것이다.

이런 수모를 견딜 수 없었던 마을 주민들은 훗날 본래의 이름인 봉개리를 되찾았다.

사진을 기증한 김씨는 제주시 화북동 거로마을 출신으로 4·3당시 아버지와 막내 고모가 희생되면서 할아버지(김광수) 손에서 커야했다. 당시 김씨의 나이는 9살이었다.

김씨는 “4·3평화공원에 모셔져 있는 가족들의 위패를 보면서 위안을 받아온 만큼 작은 보답으로 사진을 기증했다고 말했다. 이어 평화공원에 작은 나무라도 심어달라며 100만원을 기탁했다.

양조훈 이사장은 사료적 가치를 지닌 사진은 디지털 스캔을 통해 4·3자료로 등록하고, 성금은 4·3평화공원 내 평화의 숲 조성에 사용하겠다며 김씨에게 고마움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