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과 아리랑
고려인과 아리랑
  • 제주신보
  • 승인 201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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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종, 前 중등교장

1917년 10월부터 시작한 옛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차차 이웃 국가를 강제로 병합한 바, 폴란드·불가리아·체코·루마니아·슬로바키아·카자흐스탄 등 모두 27개 국가로 이루어진 실로 방대한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 스탈린이라는 독재자가 등장해 철권통치를 하게 되었다. 스탈린은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망국의 한을 품은 채 안주하는 것을 보다 못 해 중앙아시아의 버려진 땅 불모지로 이주시키는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래서 스탈린은 1937년 9월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하던 고려인을 강제로 이주시키게 되었다. 첫 출발지로 라즈돌노예 역에서 시작해 무려 10개지역 역까지 포함해 6500㎞를 열차로 이동하게 되는데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은 17만 내지 20만명인데 이 중 9000명 내지 2만5000명이 강제이주 도중에, 또는 정착 과정 중 희생됐다.

망국의 설움을 가슴에 품고 살려고 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다시 강제이주를 하게 된 고려인은 영하 40도에 달하는 추위와 굶주림을 못 이겨 죽을 수밖에 없었으며, 맨손으로 토굴을 파고 움막을 짓고 살려고 했지만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견디다 못해 많은 사람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일들이 고려인 1세대들이 당한 비참한 현실이었다. 그래도 살아남은 고려인 1세대들이 불모지 땅을 개척해 비옥한 땅으로 만들었고, 오늘의 고려인 2세대, 3세대들이 넓은 대지에 농사를 짓고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강제이주를 당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위와같은 역경을 겪으면서 고려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더구나 불모지 땅으로 이주한 고려인은 억척스러운 삶으로 오늘의 행복을 누리고 있지만 가족 간 또는 이웃 간 모임을 가졌을 때 그들이 근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뿌리를 생각할 때 유일하게 부르는 노래가 있다.

그것이 ‘아리랑’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후렴, 가자 가자 어서 가자 백두산 덜미에 해 저물어 간다. 후렴, 풍년이 왔다네 풍년이 와요 삼천리 이 강산에 풍년이 와요. 후렴, 한라산 백록담 좋은 경치 남국의 운치요 영주의 자랑. 후렴, 인왕산 뻐꾸기 밤 새워 울고 가신 님 생각에 눈물지네. 후렴, 앞집에 처녀 시집을 가는데 뒷집에 총각 목매려 간다. 후렴” 등 30개나 되는 가사의 노래를 합창하며 내가 태어난 조국을 그리며 눈물을 흘린다.

아리랑은 비단 노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노래를 통해 아리랑은 사랑, 아리랑은 생명, 아리랑은 생활, 아리랑은 희망, 아리랑은 이별, 아리랑은 미래, 아리랑은 고난, 아리랑은 조국, 아리랑은 고려인의 비극을 상징하게 된다.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인을 보면 중국에 254만여 명, 미국에 249만여 명, 일본에 81만8000여 명, 캐나다에 24만여 명, 우즈베키스탄에 18만1000여 명, 러시아에 16만9000여 명, 베트남에 12만4000여 명, 브라질에 5만1000여 명, 독일에 4만여 명, 영국에 3만9000여 명 등 모두 31개국에 740만명에 달하는 재외동포들은 가슴속에 한국인, 즉 Korean이라는 용기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에 살고있는 한국인은 아무런 의식 없이 아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외국동포들에게는 위와 같은 아리랑 노래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