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너희들이
어느새 너희들이
  • 제주신보
  • 승인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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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오가는 일이 담담해질 만도 한데 여전하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꼼짝 않고 시선을 좇아 마음도 따라간다. 그러다 뒷모습이 완전히 시야를 벗어나면 가슴이 휑하다. 아이들과 이어졌던 줄이 툭 끊기는 단절감이 들어 콧등이 찡하다.

손에 채 가시지 않은 남은 온기에 손을 오므린다. 수년 동안 예사가 됐는데 왜 매번 이러는지. 보내는 일만 아니라 내가 서울에서 돌아오는 길도 수월치 않았다.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그만하면 면역이 생겼을 텐데, 무심히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며칠 걸린다.

집 안은 떠난 뒷자리로 어수선하다. 넓은 공간이 좁다고 느껴질 만큼 꽉 채워졌었다. 얼굴을 마주 보며 밥을 먹고, 어깨도 부딪치며 왁자지껄했던 거실이 적막감으로 낮게 가라앉았다. 세면기에 달라붙은 긴 머리카락 한 올은 누구 거지. 금방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조차 소중해 함부로 털어내지 못한다. 나 혼자 짝사랑인가. 제 갈길 바삐 재촉하는 자식들의 모습에 섭섭한 마음이 들어,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가방 가득 채우고 모자란 것 같아 냉장고를 뒤적이고, 빈자리만큼 속이 허전했다.

공항에서 손자를 안고 볼을 비비고 돌아서는데 아이가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도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제 엄마 품으로 고개를 묻고 울먹였다. 이런 심성을 가진 아이라면 바르게 잘 자라겠구나. 떨어져 살지만 가족이라는 일체감을 확인한 것 같아, 허전하던 마음이 따뜻해졌다.

첫 손자를 얻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좋았다. 내 손자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버들개지처럼 솜털도 채 벗지 못한 갓난이를 보고 돌아와 자꾸 눈에 어른거렸다. 누굴 닮았더라. 도무지 모습이 떠오르질 않았다. 혼자 이름 부르고 그러다 벙실벙실 웃고, 마음이 환해지곤 했다.

만날 적마다 한 뼘쯤 쑥쑥 자란 것 같던 손자가, 어느새 코 밑이 거뭇거뭇하고 목소리도 걸걸하다. 참새처럼 조잘대더니 말을 아끼고 과묵한 청년티를 낸다. 여린 풀잎같이 감성이 풍부했던 손녀는 거울 앞에서 볼을 토닥이며, 성급하게 숙녀 흉내를 낸다. 두 팔을 벌리면 달려와 폭 안기던 아이들이 몸을 사린다. 성숙해 가는 몸의 변화에 예민한 시기다. 그들의 속내를 한번 들여다보고 싶지만, 짐짓 모르는 척 바라볼 뿐이다. 한창 사춘기 성장통을 겪고 있다. 예측불허의 용광로 같은 사춘기도 성장기의 일부다. 일생의 한 단면 같은 계절이 지나면, 한층 듬직한 청년이 되리라.

내 키를 훌쩍 넘어 손자의 뒤에 서면 난 존재감이 보이질 않는다. 벌써 이 녀석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만큼 세월이 흘렀다. 만날 때마다 대견하고 든든하다. 손자들이 커 가는 것은 큰 기쁨이요, 가슴 뿌듯한 일이다. 그러나 자식들의 얼굴에 중년 티가 언뜻 스치는 걸 볼 때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어느새 너희들이. 혹 삶이 고단하지나 않은지 하는 노파심이 들곤 한다.

오르내리는 성적에 민감하고 숫자로 등급을 가르는 치열한 학창 시절이다. 이런 족쇄 같은 굴레는 언제 변할지 안쓰럽기만 하다. 꼼짝 않고 책과 씨름하는 걸 보면, 망아지처럼 푸른 초원 위를 맘껏 뛰놀게 하고 싶다. 후일 허망한 권력에 눈 두지 말고, 바람 같은 명예를 탐하지 않는 의연한 사람이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인생을 뜨겁게 껴안아 열정인 삶을 사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