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살고픈 세상
평범하게 살고픈 세상
  • 제주신보
  • 승인 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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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국, 제주테크노파크 용암해수센터장/논설위원

손자병법 36계 중 구변편에 나오는 얘기다. 장수(將帥)가 피해야 할 다섯 가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첫째, 죽기를 각오하면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고(必死可殺也), 둘째, 살려고만 한다면 반드시 포로로 전락할 것이요(必生可虜也), 셋째, 분노에 치밀리면 수모를 당하게 되고(忿速可侮也), 넷째, 청렴과 결백만을 고집하면 치욕에 빠지게 되며(廉潔可辱也), 다섯째, 병사를 너무 아끼면 번민에 빠질 것이다(愛民可煩也). 이는 장수의 판단과 선택이 신중해야 하며, 그 파급효과가 무척 크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은 죽기를 각오할 일이 많지 않을 것이요, 살려고 아등바등하지도 않을 수도 있고, 웬만해서 분노하지도 않을 것이다. 청렴과 결백에 얽매일 필요도 없고, 돌봐야 할 사람이라곤 가족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은 장수들에게는 당연히 피해야 할 일들이 있게 마련이고,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들이 있는 것일 게다. 장수로 살기가 백번 힘들고 어려운 일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평범하게 살고픈 보통사람에게도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한때 ‘보통 사람’이란 표현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요즘은 보통 사람으로 살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아니 보통 사람으로 사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세상처럼 느껴진다. 혹자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하물며 장수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 것인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아간다. 비범하게 사는 것이 부럽지 않다. 비범하게 살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런데 세상은 평범하게 사는 것을 어렵고 힘들게 한다. 그래서인가, 역설적으로 비범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소위 잘 나간다는 사람들의 세상이다. 손자가 말한 장수들인 것 같다. 사람은 생리적으로 지배받기를 싫어한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군림하고 싶고, 지시받기보다는 지시하기를, 누구보다는 낫다는 얘기를 듣고 싶고, 뭐 대충 그렇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친구가 상대방에게 “너 영화배우 장동건 닮았다.”라고 했더니 과히 좋아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사실은 장동건이 더 기분이 않좋았을수도 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다소 비범하려는 속성이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장수로 살기를 원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살기가 어려울까. 그렇다고 모두가 백성으로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장수와 백성을 구분짓는 것 자체가 어려운 세상이다. 장수로 살 능력과 가치를 지닌 자는 장수의 길에서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고, 백성으로서의 충분히 존재의의를 찾고자 하는 사람은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상황을 만들어 줘야 할 일이다. 장수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으로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될 일이고, 백성은 기본에 충실하고 의무를 다하며, 장수처럼 나서서는 않될 일이다.

갖가지 루머와 가짜뉴스가 판치는 요즘을 가치관의 혼란시대라 일컫기도 한다. 혹자는 어른상실의 세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정의인지 애매한 경우가 허다하기에 갈팡질팡이 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평등과 자유를 혼동해서는 안 될 일이며, 감사와 존경을 착각해서도 안 될 일이다. 피해야 할 일을 잘 구별하고 이를 현명하게 극복하는 지혜가 절실한 때이다. 평범하게 살고픈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 어렵다고 미룰 수 없는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기에 장수나 백성이나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