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통의 수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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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필자가 신학공부를 시작하던 1986년에는 그 해 초부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큰 사건들이 일어났다. 먼저는 그 해 1월에 일어난 우주선 폭발사고이다. 미국이 TV 방송으로 생중계하면서 우주선을 쏘아 올렸는데 수많은 미국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챌린저호가 공중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그 폭발과 함께 레이건이 추구하던 아메리카니즘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에는 소련에서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사고가 일어나게 된다. 굳건한 쇠빗장을 풀어헤치면서 소련이 스스로 페레스트로이카를 외치게 된 데에는 체르노빌의 폭발이 상당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던 시기에 독일의 ‘슈피겔(Spiegel)’을 비롯한 온세계의 언론은 염려스럽게 AIDS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과도한 아메리카니즘에 대해서는 자제를, 경직된 이데올로기의 쇠빗장에 대해서는 개방을, 그리고 임박했던 지구화에 대해서는 절제와 주의를 예고했던 것이 아닌가 판단되었다.

역사적 사실들의 창고로부터 몇가지 사건을 선택하여 나름의 해석을 제시하는 것은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큰 사건이 일어나면 당장에는 책임과 비난을 면하려는 일시적 눈가림의 해석들이 제시되지만, 어느만큼 시간이 흐르면 보편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해석들이 나오게 된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다.

세계사의 흐름은 시시때때로 멀리 미래를 바라볼 망원경을 권장해오는데 우리는 지나치게 실물 현미경을 고집해온 것이 아닌가 염려될 때가 있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물질과 분배와 공평이라는 실물 현미경과 현실 권력에 집착하는 동안에 격랑의 세계사는 우리를 제치면서 저 앞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염려되는 것이다.

과거사 해석이나 미래 전망은 역사의 한 부분으로서 이루어지게 된다. 역사가 자신이 살아가는 시·공간의 조건과 영향 아래 과거사 해석이 이루어지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전망이 진행된다. 여러 역사가들이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서술할 때 그들이 같은 결론에 이를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는 경쟁과 갈등의 장이라는 점과 역사가(歷史家) 개인의 창의적 요소까지 고려할 때, 역사의 해석은 다양하게 나타나리라 기대하는 것이 역사적인 자세라 판단된다. 그렇지만 어두운 의도와 권력욕을 내장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다양한 해석이 그렇게 크게 다양하게 나타나지는 않을 듯하다.

우리는 ‘분단의 현실’과 ‘과거사에 집착한 한일 갈등’과 ‘심히 염려되는 경제 현실과 전망’ 그리고 ‘눈앞에 현실로 다가와 있는 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동일한 사료(史料)를 눈앞에 두고서, 서로 극단적으로 다르면서도 결코 순수해 보이지 않는 역사 해석과 관심을 내보이면서 갈등과 분열 속에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염려와 동시에 기대가 되는 것은 어려운 시기에 진실을 전해줄 만한 주요 언론들이 웬일인지 뒷걸음치는 가운데, IT 시대의 새로운 소통 수단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힘차게 일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광화문의 모습은 주로 그 새로운 소통의 수단들을 통하여 전해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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