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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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신보
  • 승인 201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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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익 칼럼니스트

제주에서만도 6개의 일간 지방지가 있다. 각 지방지에서 내는 칼럼 등 오피니언 란에 좋은 칼럼만 선택해서 게재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 치고 좋은 글에 대한 칼럼은 자신에게도 만족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감화받기를 원한다. 여러 종이신문에서 칼럼의 양은 대단하다. 칼럼이 없으면 신문이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다. 여기에서 양만큼 좋은 칼럼이 뒤따라가지는 못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칼럼니스트가 등단 시의 글에 대한 열정은 식어진다. 대신에 칼럼 등 다른 면으로 애쓴다. 좋은 칼럼은 쓰기가 어려운 대신에 우리의 감정을 감화시키는 영향이 있다.

지금까지 좋은 글에 대한 논의는 여러 사람에게서 이루어졌지만, 중심이 되는 것은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쉬운 것 같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만만찮다. 마치 운동을 열심히 하면 누구나 건강을 챙길 수 있다고 하지만, 운동선수마저 마지못해 운동을 한다. 싫어도 연습을 한다. 좋은 글쓰기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사람은 원래가 무엇을 싫어하는 게으른 동물이다. 감나무 밑에서 누워 있으면 홍시가 떨어진다면 그리할 것이다. 아마 생각이 필요 없어도 좋은 글이 써진다면 누가 생각을 거듭할까.

그리고 기호품이지만 유독 반대인 것이 많다. 담배도 금연을 해야 하고, 육류를 많이 먹는 것도 건강상 삼가야 한다. 설탕을 줄여야 한다. 소금이 없으면 맛이 없어서 소금도 적당히 쳐야 한다. 배부르면 곤란하니 75%정도의 포만감에서 수저를 놓아야 한다. 먹는 것도 선호하는 것에서 반대로 생각하면 쉽다. 기호품은 전부가 그 반대다. 좋은 칼럼은 아무 생각 없이 쓴다고 해서 탄생하지 않는다. 여러모로 생각하고 애쓰면서 틀을 잡은 다음에 써나가는 것은 제일 나중의 일이다.

행동은 생각이 우선이다.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글감도 쉽게 떠오른다. 아무런 노력이 없이 얻는 글감은 실제의 글감이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유의 고통 없이 한 줄의 생각이 떠오르겠는가. 옛 선인들이 바윗돌을 갈아 바늘을 만들었듯이 그만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다음은 많이 읽기다. 등단 전에 열심히 책을 읽었던 사람도 등단과 동시에 끝내는 경우가 많다. 등단이 종료가 아니라 시작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자만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남의 작품을 읽기가 싫은 것이다. 그런 경우 서서히 남의 작품을 읽는 것을 줄여가면서 결국에는 자기작품도 다시 읽어보지 않는다. 결국 작품의 질이 수직 하락한다.

많이 쓰기는 작품으로 남겨지니 더욱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많이 쓸수록 실력도 늘어가는 것을 느낀다. 다작을 위한 많이 쓰기는 무의미한 일이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많이 쓰기는 작품의 질을 차츰 높여 나간다.

한 편의 좋은 칼럼은 여러 사람을 감화시키기 마련이다. 글쓴이도 대학 때 모 중앙지의 칼럼에 심취했었는데, 오늘 문단의 말석에서나마 이름을 걸고 칼럼을 쓴다. 칼럼 집필 경력이 20년으로 좋은 칼럼을 쓰고자 노력한다.

문인이든 칼럼니스트이든 좋은 글을 지상 목표로 삼아야 한다. 대충 써 던지는 칼럼은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도 다친다. 각 신문에서 게재할 만한 칼럼을 엄선해서 오피니언 란에 실으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