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처럼
내 것처럼
  • 제주신보
  • 승인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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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한 장이면 충분해요.’ 어느 공중화장실 세면기 곁에 붙어 있는 문구다. 손을 씻고 종이 타월을 뽑아 쓸 때마다 늘 이 글귀가 떠오른다. 실제로 딱 한 장으로 충분히 물기를 닦아 낼 수 있다.

공항 화장실에서 한꺼번에 몰려 들어온 사람들이, 다투어 나갈 때면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망설임 없이 두세 장씩 뽑아 손바닥과 손등을 대충 닦고, 그대로 휴지통에 던진다. 다 젖지 않은 종이 타월이 쓰레기통에 걸쳐져도 몰라라 무심히 나간다. 물에 젖지 않은 채 그대로 버린 게 아까워 자꾸 시선이 간다. 그뿐만 아니다. 두루마리 화장지도 두툼하게 둘둘 말아 뭉쳐 쓰고 예사롭게 버린다.

목욕탕에서도 불편한 일을 볼 때가 종종 있다. 물을 철철 넘치게 틀어 놓고 목욕을 마친다. 잠갔다 필요할 때 꼭지를 열어 사용하면 될 텐데, 아무 생각 없이 쓰지도 않으면서 흘려보내는 물. 맑은 물이 흘러가는 게 아까워 옆 사람이 계속 눈길을 주어도 반응이 없다. 저 물이 어디서 흘러 우리에게 왔는지. 자원 빈국에서 헤프게 써서는 안되는 귀한 자원 아닌가. 그런가 하면 본인의 사용한 의자와 대야를 말끔하게 닦아, 가지런히 엎어 놓고 나가는 사람도 있다. 당연한 일인데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라 인상적이다.

내가 이용하고 난 후 자리를 뜰 때 뒤돌아보는 예의가 필요하다. 혹 남아 있는 흔적으로 다음 사용자가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살펴보는 마음도 배려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 중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타인을 불쾌하지 않게 하는 일이다. 법이란 지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눈으로 보고 머리로 판단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다.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사회가 건강하다. 양심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가르는 도덕의 잣대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보고 배우는 일인데 지각없는 어른이 많다.

음식점 식탁에 놓인 냅킨도 그렇다. 한 번 쓰고 다시 뽑고, 냅킨이 식탁에 수북하다. 용기에 담긴 김치는 먹을 만큼 꺼내 먹으라는 뜻이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내 놓고 남긴 채 식사를 끝낸다. 알곡 한 톨, 채소 한 포기도 알뜰하게 거두어 먹었던 옛날 어른들을 생각하면, 음식물을 버리는 것에 무심할 수 없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라지만, 풍요로울수록 헤퍼지는 만큼 날로 사용량은 늘어간다.

공공장소나 크고 작은 공공시설물은 여러 사람의 편의를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일종의 서비스시설이다. 이용객의 편리를 위해 만든 시설물인데 함부로 험하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물건을 아낌없이 헤프게 쓴다. 일상의 주변에 많은 것들이 일회용으로 이용되고 있어 무심해진 탓인지. 편하다는 점이 물품을 생각 없이 필요 이상 과하게 쓰고 있다. 볼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하고 있나 자문하곤 한다. 작은 것을 아끼는 습관이 큰 것도 아낄 줄 아는 행동을 키워준다. 우리는 편리함에 깊숙이 빠져 정작 그 고마움도 모른 채 산다. 편하고 고맙다 느끼는 것일수록 귀하게 여겨야 하는데. 가장 큰 환경오염의 주범이 일회용에서 비롯되었다. 결국 부메랑이 되어 고통스러운 환경오염으로 돌아오지 않는가.

자신의 잣대로 타인의 옳고 그름을 가름할 수는 없다. 내 시선으로 바라보는 남의 결점보다 상대의 시선이 나를 바라보는 단점이 더 많을 수 있다. 거울삼아 나를 돌아보며 깨달고 실천하면서 내 것처럼 아끼는 마음으로 행동한다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