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의 가을편지, ‘마을여행’
제주올레의 가을편지, ‘마을여행’
  • 제주신보
  • 승인 2019.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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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초빙교수/논설위원

가을 여행은 다녀오셨는지요? 저는 제주올레걷기축제 덕분에 가을빛에 담뿍 취하여 돌아왔습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나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라던 시인의 치기를 빌려 이 글을 씁니다.

축제의 개막식 장소가 약천사라 하여, 옛집을 찾아가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그 절이 소재한 대포동이 제 고향 마을이잖습니까. 올레를 걸을 때는 ‘놀멍, 쉬멍, 걸으멍’ 하라면서, 오라방이 서귀포올레시장에서 사다 준 검정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땅의 감촉이 온몸을 휘감아 돌아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더군요.

축제장에는 수천 명이 울긋불긋 모여서 장터처럼 들썩이고 있었습니다. 해군 군악대가 개막을 알리는 팡파르를 울리자 분수가 하늘을 향해 물줄기를 쏘아 올리더군요. 그 순간을 숨죽이며 기다렸던 것일까요? 아침햇살이 기지개를 켜면서 금빛가루를 마구 휘날렸습니다. 세상에! 그 유명한 라스베이거스의 물쇼도 연출하지 못하는 오색 무지개가 연못위에 떴습니다. 탄성을 지르는 이들을 바라보며, ‘저 못의 옛이름이 엉덕물이고, 그 용천수가 밭을 논으로 만든 덕분에 대포 사람들이 쌀을 맛볼 수 있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참으로 덕스런 물이었지요. 그때는 시집갈 때까지 쌀 한 됫박을 먹으면 ‘대포리 일등 처녀’라 하였답니다.

올해로 10년째 이 축제를 개막한 서명숙 이사장의 담당은 날씨랍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높푸른 하늘과 다사론 햇볕이 걷기에 아주 그만입니다. “이런 날씨는 순전히 설문대 할망 덕분이우다. 저 한라산을 보십서. 우리 할망이 어깨를 들썩이멍 막 일어나젠 햄수게”라는 그녀. 올레 이사장은 아무나 하나. 설문대 할망이 점지하셨으니 날씨도 받쳐주는 거겠지요.

올레 8코스의 바닷길이 시작되는 배튼개는, 여기에 배를 대고 말들을 실어 날랐던 곳입니다. 몽글거리는 자갯돌들이 어찌나 방실거리는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마주앉았습니다. 아, 눈부신 바다. 상군 해녀인 어머니를 따라 물질을 배우며, 애기바당에서 조쿠제기를 잡던 일이 아른거렸습니다. 가지 않은 그 길이 여전히 그리운 저는 지금도 해녀를 꿈꿔봅니다. 큰엿도, 제배낭게, 큰개물, 대시비개, 당압개, 자장코지, 지삿개(주상절리)로 이어지는 고향의 바닷길을 걸으면서 간절하게요. 누군가는 ‘50에 바다를 보았다’고 하지만, 저는 바다에 뉘여서 잔뼈가 굵어지고 새가슴이 펴지면서 날개를 퍼덕거렸답니다. 제 인생의 공작소는 바다였지요.

축제의 향연은 천제연 캠핑장에서 점심식사와 함께 펼쳐졌습니다. 걸어오는 길에 첼로, 색소폰, 기타 소리에 맞춰서 노래하고 춤추느라 배가 홀쭉해진 올레꾼들. 비빕밥·광어회·순다리·감귤쥬스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8코스의 마을들이 모두 대박을 친 모양입니다. 올레야말로 마을여행으로 통하는 길, 제주도가 모색하는 지역관광의 진입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올레축제를 모델로 해서 마을여행을 살려나간다면, 경제·환경·사회를 책임지는 지속가능한 관광이 만개할 듯합니다. 제주다움의 가치를 사랑하는 올레꾼들의 눈높이에 맞추면, 제주관광의 글로벌 경쟁력은 자연스레 결실할 것입니다. 올해부터는 개막식이 영어로 통역되더군요. 외국인들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원래 올레는, 집에서 동네 길까지 이어지는 골목이었잖습니까.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의 손을 붙잡고서, “아명허믄 못사느냐 조롬 붙이지 마랑 탕근도 졸곡 물질도 허멍 시집 어른 뜻받앙 살암시믄 살아진다”며 따라오시던 길. 김종두 시인의 그 ‘제주여인’이 생각나서 가을하늘 위에다 새악시의 고운 꿈을 그려보았네요.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