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과 ‘벌써’
‘아직’과 ‘벌써’
  • 제주신보
  • 승인 201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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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아직’과 ‘벌써’, 고무줄처럼 탄력을 지닌 말이다.

버스 시간이 조금 남아 있을 때 ‘아직’이란 부사를 끌어들인다. 서편으로 저물려면 한 발은 남았다고 아직 해가 있다 한다. 가파도에 가 봤냐고 묻는 사람에게 못 가 봤다면 ‘아직요’라 대답한다. 사랑다운 사랑을 해 본 적 있느냐는 물음에 그런 경험이 없으면, ‘아직’이라 말한다. 지금도 옛날 그 집이냐고 먼 데서 걸려온 전화에 왜 짐을 싸느냐, 이곳이 편안하니 ‘아직’도 그대로 눌러 산다고 웃음이 흘러나온다.

아직은 미완이고 미결이고 결말로 가는 한 과정이다. 끝나지 않은 것이고 돼 가는 중에 있는 어느 시점이고 공간의 어느 지점이다. 가부나 여부가 채 결정 안된 상태다. 박무에 앞이 가렸거나 어둠의 끝자락이 다 걷히기 전 사물의 윤곽이 확연치 않아도, ‘아직이란 말이 자리를 튼다.

아직은 가능성이 아직 소멸하지 않았으니 허약한 말이 아니다. 탐색과 검토와 접근이 이뤄지는 흐름 속 물고 늘어지는 질긴 근성의 말이기도 하다. 시종여일 다가가려는 의지가 아직 속에 꽉 차 있어 좀체 흔들림이 없다. 일에 치여 고단할 때도 기대하게 마음을 지피는 아직 은근한 불씨 같은 것이다.

‘벌써’는 아직을 밀어낸 자락에 들어선다. 약삭빠름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비 호감의 말이다. 벌써 그렇게 돼 버린 것은 돌이킬 수 없게 돼 버렸다 함이다. 그렇게 돼 버린 것은 대개의 경우,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돼 버려 하릴없으니 대책도 없는 것이다.

벌써는 후회와 회한의 말이다. 남에 견줘 아주 처졌을 때 ‘그가 벌써’라며 가슴 쓸어내리기도 한다. 꼭 하고자 하던 일, 기어이 이루고자 하던 일을 놓치고 말았을 때 한숨 버무리며 뱉는 넋두리, 그것에 섞여 튀어나오는 말이 벌써다. ‘에구 그 좋은 때가 벌써 지나가버렸구나.’ 가슴을 치지만 지나간 것을 되돌리지 못하니 다 소용없는 일이다. 실패가 한으로 맺힐 수도 있다.

제일 충격적인 게 쏜살같이 지나는 시간, 바람처럼 흐르는 세월이다. 서른인가 하는데 마흔, 아직은 마흔이니까 하는데 쉰, 어느새 예순 일흔의 나이를 먹는다. 사람은 과속 페달을 밟으려 않는다. 인간의 수요장단을 주재하는 것은 전지전능한 신이다. 그 가 매일 운전자의 등을 떼밀어 놓는다. 사람들은 시간의 속력에 놀라 ‘아니 벌써’를 연발한다. 한 생이 덧없다고 하는 말 인생무상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나라가 두 동강 나 아직도 남북이 닫혀 있다. 드라마를 보는 것 같던 두 정상의 도보다리 산책에 가슴 뛰었는데, 그건 신기루였나. 통일커녕 아직도 남북 간은 남남보다 더 정이 없고 차갑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벌써 이뤄야 할 통일이 아직이다. 한미일, 한중, 한러의 미묘한 관계에 안보가 불안하다. 나라 안은 적폐 청산, 좌우 진영논리, 여야가 서로 치대며 개점휴업으로 세비만 축내는 이 나라 국회, 갑질이 끊이지 않는 유별난 세상…,

아직과 벌써는 대척점에 있는 두 말이다. 아직에 가슴 두근거리는 설렘의 여운이 있다면, 벌써는 종결된 완료시제의 스산함이 스민다.

‘아직’과 ‘벌써’는 한때의 자취다. 벌써라야 할 게 아직에 머물면 안된다. 우리, 나아가며 이뤄 아직에 벌써를 포갤 순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