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비 앞에서
윤동주 시비 앞에서
  • 제주신보
  • 승인 201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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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능자 수필가

글빛소리 합창단원 24명이 지난 68일 일본 시민 단체와 문화교류를 위해 교토부를 방문하였다. 이 시민 단체는 교토부 문화원에서 윤동주 시를 좋아하고 한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문화원생들이다.

교토는 천년 이상을 일본의 수도로 지내 왔고 교토부의 중심지엔 절, 신사, 불상, 전각을 시작으로 축제와 문화 등, 긴 세월에 걸쳐 길러져 온 수도로서의 전통이 현대에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는 교토 시내 한 호텔에 여장을 풀고 윤동주 시인을 추모하기 위하여 우지 강변에 있는 시비를 찾았다. 가는 동안 나는 소녀 시절로 돌아가 마음이 설레었다.

윤동주 서시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부끄러워했다.” 이 시구詩句가 소녀의 순수한 마음을 표현해 주는 것 같아 서시를 좋아 했었다.

서시는 맑은 영혼으로 진솔한 삶을 살고자 했던 시인의 순결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어 많은 사람들의 애송시가 되지 않았나 싶다.

교토 시민들이 먼저 와 있었다. 윤동주 시비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은 우지 강변 다리 밑 조그마한 공터에 강물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도시샤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우지로 놀러 왔다가 남긴 한 장의 사진이 계기가 되어 여기에 기념시비가 세워 졌다고 한다. 우지에서 사진 찍은 후 바로 체포 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시비는 윤동주를 기리는 교토 시민 모임을 중심으로 기념비 건립위원회를 12년 전에 발족하여 건립되었다.

체포되기 직전 25세의 청년 윤동주가 우지 강변을 배경 삼아 수줍게 웃는 사진을 보니 시비에 새긴 윤동주의 글귀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비석에 새긴 시는 새로운 길로 한국어와 일본어 번역본이 같이 게재돼 있었다.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나라의 독립을 간절히 희망 했던 시인 윤동주.

일본인들도 윤동주의 절개와 순결한 희망을 지켜낸 정신이 시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시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시비 앞에서 안내 가이드가 윤동주의 사인은 생체실험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 말하면서 윤동주에게 소금물을 계속 주입하여 얼마나 생존 할 수 있는지 마루타 생체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나쁜 놈들” “언니 일본 사람들 알아 들엄서.”

묵념을 올릴 때 강변에 바람소리가 숨소리로 들리는 듯하였다. 조국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새로운 길” “서시” “별 혜는 밤을 낭송하고 헌화 하였다. 그리고 아리랑~아리랑하고 조용히 노래를 부르면서 넋을 위로 하였다. 나는 감동의 쓰나미가 밀려와 그리움과 원망 미움 같은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주체 할 수 없었다.

윤동주 시는 순수하게만 느끼기보다 그 이면에 숨겨진 고통이나 아픔 같은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윤동주 시비의 이름을 왜 <기억과 화해의 비, 記憶"和解">로 새겨 놓았을까?

 

기본적인 인권을 유린당한 문학청년 윤동주를 기억하는 것이 일본인들에게는 평화요, 화해에 이르는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큰 힘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학의 힘을 생각하게 한다.

사람은 갔어도 시는 남았다. 윤동주 시비 앞에서 윤동주 시를 사랑 하는교토 시민들과 함께 시를 낭송하고 숙연하게 추모 행사를 했다는 것이 마음 뿌듯하고 보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