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심이었으면
노파심이었으면
  • 제주신보
  • 승인 20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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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꽤 춥다. 저녁 먹고 소화도 시킬 겸, 가까운 학교 운동장엘 나갔다. 그보다 지난달 건강검진에서 운동 부족이라는 말을 듣고, 나름 접근이 쉬운 운동법을 찾다가 내린 결정이다.

꼭 해야 되는 일이라 생각하자 피곤이 먼저 둥지를 튼다. 운동장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이미 트랙을 열심히 도는 이도 있고, 가벼운 차림으로 삼삼오오 무리 지어있고, 몇 팀은 축구를 하고 있다.

서너 바퀴 돌 때쯤 트랙 바깥쪽에 누가 벗어둔 상의 하나가 뒹굴고 있었다. 잠시 벗어 놓았나 싶어 밟을까 봐 옆에 밀어 두고 다시 걸었다. 몇 바퀴 돌자 운동하던 팀들이 서서히 흩어지는 모습이다. 첫날에다 삼사십 분 걷고 나니 지루하고 덩달아 걸음도 헐거워졌다.

한 사람씩 뜨고 난 운동장은 조금 전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저쪽 운동기구 있는 방향으로 누군가의 모자가 보였다. 돌아서며 본 계단 위에는 휴대용 물병도 있다. 시간이 꽤 지나 마무리하려니 아까 물건들이 신경 쓰였다. 모자는 운동기구에 걸쳐 놓고, 상의도 얼른 눈에 띌 수 있도록 펜스 앞쪽에 걸어 두었다.

다음날도 비슷한 시간에 운동장엘 갔다. 어제 일이 생각 나 살펴보니 옷도, 기구 옆에 올려 둔 모자도 그냥 제자리다. 주인은 찾지 않고, 다른 이들은 제 물건 아니니 신경 안 썼나 보다.

물자가 귀하던 때와 지금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임을 안다. 물건을 함부로 대하거나 낭비하는 것을 보며 어른들은 ‘땅을 죈 종일 파 보라, 땅에서 동전 한 닢 나오나’며 꾸중하듯 아껴 쓰기를 강조했었다. 돈이 있어야 뭔가를 사고, 그것을 얻기 위해 누군가의 수고가 담보되기에 하는 말이다. 그런 교육들은 일상에 스며들고 학습되어 습관으로 자리한다. 제 물건 제대로 챙기지 못하거나, 안 하는 것을 보면 나더러 돈 달라는 게 아닌데도 영 거슬린다.

내 돈 주고 산 물건에 대한 나름의 생각도 제 각각이겠으나 잃었든, 잊었든 찾으려 않는 것이다. 아끼고,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고 또, 그런 교육을 받았던 세대로서 그 행동들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싸다 해도 돈을 줘야 살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을 생산하는 데 따른 비용이야 당연히 제품 원가에 포함됐겠지만, 생산을 위한 환경오염 등 공공재에 대하여도 한 번쯤은 고민해 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끼고 절약하자는 말을 하다 보면 가끔 꼰대로 내몰려, 하는 일에 훼방을 놓거나 쓸데없이 간섭하는 사람 정도로 치부해 버린다. 때론 사소함을 이해 못하고, 부정적으로만 해석하려는 것처럼 비칠까 봐 방관자적 자세를 취할 때도 있다. 젊은 날, 어느 하루 쉬는 날 없이 열심히 일만 했고, 그런 삶이 바탕이 되어 지금의 터전을 만든 세대로서 안타깝기만 하다.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했던가. 풍족함은 물건에 대한 필요성과 소중함을 퇴색시켜 쉽고 가볍게만 여기려는 경향이 크다. 그날 운동장에서 본 것도 ‘또 사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사소해 보이나 하찮다는 생각도 반복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은 습관이 될 수 있다.

오늘처럼 어렵던 시절을 떠올리면 그 시간들은 늘 가엾고, 생각만으로도 이 고운 계절 세월의 한 허리가 아파온다. 이런 마음이 그네들의 표현대로 쓸데없는 노파심이었으면,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