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설중매(雪中梅)의 묘한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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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휘, 前 농업기술원장

14세기 말엽 고려왕조가 허물어지고 조선왕조가 세워졌을 때의 일이다. 어떤 이는 적극적으로 새 왕조건설에 앞장서거나 어떤 이는 고려왕조에 충성을 다해 목숨을 잃기도 하고 두문불출해 세상과 인연을 끊기도 했다. 출세에 만족한 사람들은 자축을 즐겼는데 어느 날 재상들이 모여 큰잔치를 벌였다.

그 자리에 많은 기생들이 몰려 나와 풍악으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모두들 자기 합리화로 새로운 세상의 중심 세력임을 은근히 부추겼으며 기생들은 모두 교태어린 웃음으로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그중 늙은 재상이 기생 설중매에게 욕심을 갖고 은근한 뜻을 보였다. “얘야 오늘 밤에는 나를 모시겠느냐?” 설중매가 대답을 하지 않자 늙은 재상은 감정이 상한 듯 힐난하는 말투로 “너희 기생들은 원래 동가식서가숙한다더라. 오늘은 내 말을 들어라.” 늙은 재상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를 하며 설중매의 기를 꺾으려 했지만 설중매는 살며시 웃음을 띤 얼굴로 아주 부드럽게 “예~ 동가식서가숙하는 천한 몸으로 왕씨를 섬겼다가 이씨를 섬기는 재상 어른을 오늘 모시게 돼 영광이옵니다”했다. 수작을 걸었던 재상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 됐다. 예상 밖의 언급에 재상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설중매는 무슨 뜻일까? 눈속에 피는 매화라는 뜻으로 예부터 기생은 한번 가져볼 만한 이름이요,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는 강한 생명력 때문에 굳은 절개를 중시한 선비로부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위에 말한 설중매는 그 이름에 맞는 최선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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