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희낙락 대한민국
희희낙락 대한민국
  • 제주신보
  • 승인 202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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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희, 춘강장애인근로센터 사무국장·수필가

신년 가족과 여행을 다녀왔다. 새벽같이 이른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여 여러 관광지와 맛집을 들르고 난 후 숙소로 정한 남이섬에 짐을 풀었다. 저녁을 먹고 나선 산책길에서 뜻밖에 삼십여 년 전 할머니 댁의 밤 풍경을 만났다. 어둠 사이로 작은 등불들이 발길을 안내하고, 벌레 우는 소리도 짐승들의 소리도 없이 오직 타닥타닥 나무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들리는 고요한 밤이었다.

건물을 둘러싼 환한 조명도, 늘 봐오던 간판의 네온사인도 하나 없이 달빛과 작은 등불만이 걷는 이의 벗이 되어 주는 밤 속에서 나는 안식을 떠올렸다. 그리고 가족의 얕은 콧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따스한 잠자리는 “아! 좋다”하기에 충분했다. 그중 으뜸은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음이었다. “전기요금 나온다. 불 꺼라”하시던 그때 우리의 밤을 닮은, 오랜만에 우연히 마주친 고요함이 정겹고 달콤했다.

가족 여행을 떠나던 아침, TV에서는 이란과 미국의 전쟁 뉴스로 야단법석이었다. 나 또한 남편과 전쟁이 우리나라에, 아니 우리에게 미칠 영향이 어떠할까를 걱정했었는데, 그날 밤 우리는 지구를 떠난 듯 안락한 잠을 누렸다. 잠잠한 휴식은 진정한 쉼으로 안내하였다.

1월 첫날, 일반 업체에 근무하던 장애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온 연락이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새해 인사를 나눴더니 “국장님 저 취직시켜주세요!”한다. 다니던 직장은 왜 그만두었냐는 질문에 정직원이 아니어서 해고되었단다. 얼굴 보자는 말로 전화를 끊었고 근로센터로 찾아온 그와 한참을 이야기 나눴다.

2019년은 모두에게 힘든 한해였다. 지구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수많은 전쟁과 난민, 천재지변 수준의 환경 피해와 환경 난민까지 우리를 걱정으로 내몰아 갔다. 대한민국은 어떠했는가. 2019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 공명지조(共命之鳥)가 말해주듯이 이슈 없는 달이 없었고, 시끄럽지 않았던 날이 없었던 것처럼 정신없이 뉴스에 휘둘려버린 한해였다.

공명지조를 이야기한 영남대 철학과 최재목 교수는 2020년을 예견하는 사자성어로는 파란만장을 이야기한다. 듣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만길 높이로 커진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어려웠을 적에도 우리에게는 늘 희망이 있었는데, 이제는 수많은 지식인이 내일은 더 어렵다 한다. 희망적인 사자성어를 들은 지가 언제였는가? 기억을 더듬어야 할 형편이다.

올해는 모든 이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하였으면 좋겠다. 우리는 늘 이야기 해왔다. 웃으면 복이 오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도 하였다. 그뿐인가 누군가는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고 하였다. 행복의 절대조건인 웃음을 위해서는 먼저 희망을 품어야 한다. 나 자신과 우리에 대한 희망으로 우리는 한번에서 두 번으로 그리고 하루를 웃는 것이다.

희희낙락 대한민국을 위하여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어려움에 대한 저소득층의 체감지수는 나의 강도와 다르다는 것이다. 경제가 나빠지면,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고, 환경의 위협은 더 커서, 삶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폭우나 대설에 잠자리 걱정해야 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2020년 연말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는 희희낙락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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