熏習(薰習)
熏習(薰習)
  • 제주신보
  • 승인 202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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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논설위원

熏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굴뚝을 통하여 연기가 빠져나가는 모습을 그린 글자라고 한다. 마치 연기가 피는 곳에 있으면 서서히 연기냄새가 몸에 배어 젖어드는 것과 같고, 薰이란 그 글자에 풀(艸)을 더한 글자로 향기가 나는 풀에 젖어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習은 새가 태양아래에서 날기를 연습하는 모습을 그린 글자라고 한다.

따라서 ‘熏習(훈습)된다’는 말은, 연기나 향기로운 풀의 냄새에 젖듯이, 사람도 어떤 환경에 젖어 차츰 차츰 변하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 부모가 빚을 지고 해외로 도망가자 그 아들이 곤욕을 치른다는 기사가 있었다. 아들이 아비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묻는가?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것이 있는데 어찌 관계가 없을까? 비록 아직 발현되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 자식도 이미 그런 종자를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선비집안에 선비 나고, 도둑 집안에 도둑 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한 뱃속의 자식도 아롱이다롱이며, 일란성 쌍둥이라고 같은 사람은 아니니, 꼭 같을 것이라는 법은 없다. 살면서 마주하는 환경이 다르면, 새롭게 훈습되는 것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로 변하듯, 사람도 같은 부모 아래에서 같은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주위의 환경에 따라 악하게도 되고 착하게도 된다.

그래서 누구를 벗하느냐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며, 누구나 좋은 환경의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여 좀 더 좋은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젊은 시절, 나는 지도교수님의 책이나 논문을 읽으면서, 교수님의 탁월한 학문적 식견에 탄복하였고, 마음속으로 항상 존경하고 흠모했었는데, 지금은 나도 간혹 나의 학생들로부터 같은 말을 듣기도 한다. 그리고 나 역시 내 학생들의 탁월함에 놀라며 기뻐하곤 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의 지도교수님을 믿고 따랐던 것인가? 아니면 지도교수님의 가르침에 훈습되어 나도 그렇게 변한 것일까?

혹 나도 이미 그런 사람이었으며, 그렇기에 그런 지도교수님을 존경하였고, 이제 나도 나의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교수님께 감사하고, 믿고 따르는 내 학생들에게 감사한다.

사람은 부모의 가르침이나 환경을 떠나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부모는 그의 부모에게 배웠을 것이며, 그 부모는 또 그의 부모에게서 배웠을 것이니, 조상을 떠나 홀로 존재하기 어렵고, 벗은 끼리끼리 모여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니, 벗을 떠나 홀로 존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예의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훌륭한 조상의 피를 받고 태어난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며 정의로운 사람을 벗할 것이지만, 살기 위해 온갖 비굴한 짓을 일삼는 조상의 피를 받고 태어난 사람은 불의한 사람을 벗할 것이다.

자식을 보면 아비의 과거를 알 수 있으며, 자식의 미래를 모르겠거든, 부모나 벗을 보면 미래가 보인다.

당당하게 사신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스스로 노력하여 검사가 된 사람들은, 거꾸로 매달아도 검사이지만, 근본도 없는 집 자식으로 태어나 세상이 변하여 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은, 한 치 앞 미래를 보지 못하고 ‘어쩌다’라는 요행만을 좇다가, 가까운 미래에는 형무소가 제집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잊히고 싶다고 마음대로 잊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