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신보
  • 승인 2020.01.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설’의 시·공간으로 문득 윤극영 선생의 동요가 흐른다. 근래 들어 까치가 유해조로 낙인 찍혔지만, 이름엔 설의 설렘이 남아 있다. ‘곱고 고운 댕기’를 들이지 않고 평소대로 옷 입고 신발 신어도 설은 온 나라를 충분히 들뜨게 한다.

귀성 행렬이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객지에서 부모를 뵙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는 흐름이다. 얼마나 무리 지었으면 행렬일까. 귀성길 고생도 마다 않는다. 차로 배로 비행기로 섬이며 오지까지 뻗친다. ‘수많은 인파’란 함의(含意)다. 부모만 뵙는 게 아니다. 친지와 친구들을 만나 정을 다져 도탑게 한다. 이를테면 인간임을 표현하는 오래된 방식이다. 유대가 강화되면서 사회적 연결망이 그만큼 단단해진다. 이 하나만으로도 우리 민족은 유난스럽고 별나다.

설을 두고 귀찮다, 피곤하다, 번거롭다. 힘들고 괴롭다 투덜대기도 한다. 젊은이들 퍽 하면 입에 올리는 말이다. 멀고 먼 길에 얼마나 부대끼는가. 또 제수 마련으로, 치다꺼리로 치르는 고역이 웬만한가. 장시간 말뚝처럼 서서 설거지하는 며느리의 뒷모습은 민망함을 넘어 처연하다. 하지만 설이 큰 명절이 된 연유가 있다. 한마디로 설은 세시풍속이면서 사람으로 사는 근본 양식이다. 메마른 세상에, 귀성해 만남과 대화로 가문을 화평하게 하는 것처럼 소중한 게 있을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연년이 듣는데도 싫지 않은 덕담이다. 영어의 ‘Happy New Year’는 얼마나 단조로운가. 주고받는 사이에 고이는 따듯한 정이 없다. 설에 나누는 인사말에 빼놓지 못하는 게 ‘복, 행복, 건강, 행운, 평안’ 등이다. 익숙하고 살갑고 정겨운 어휘들이다.

연하장도 사라졌다. 때론 좋은 게 사라지는 사회가 낯설게 다가온다. 하지만 우편으로 배달되지 않을 뿐 좋은 풍속이 뿌리째 소멸된 건 아니다. 카카오톡, MMS 등으로 전송되는 e-연하장으로 거의 대체된 이즈음이다. 예쁜 그림과 새해 일러스트라면 보내는 사람도 받는 이도 함께 기쁘다.

새해 인사도 판에 박았던 게 시대의 물결을 타니 신선하다. 사업을 하거나 특별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 사이면,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한 한 해였습니다. 올해도 잘 부탁드리고 성취하고자 하는 일 모두 이루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에게 보내는 인사라면, ‘항상 저를 바른 길로 이끌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설 연휴 되십시오.’ 친구라면 ‘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 또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쉽게 행복하자.’라 격의 없이 주고받으면 된다.

올해 경자년은 흰 쥐 띠 해다. 쥐[子]가 얼마나 영특한가. 옥황상제가 명한 경주에서 12지신 가운데 1등을 했다. 호랑이, 토끼, 용, 원숭이, 개… 빠른 동물을 깡그리 제쳤다. 제일 부지런한 소[丑] 등에 탄 것이다. 소를 2등에 주저앉힌 건 얌체 짓이나 여간 약지 않다. 쥐는 번식력이 강하고 잽싼 녀석이라 올 경자년은 미리 보거니와 ‘쥐 판’이 될 게 분명하다. 능력 하나는 갖고 있으니 새해엔 모두 원 없이 뛰면 어떨까.

‘다들 부자 되세요’란 인사는 공허한 게 아니다. 그걸 실증해 보일 일이다.

“제주新보 독자 여러분, “복 많이 받으십시오. 건강하고 모두들 부자 되시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