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나이
참 좋은 나이
  • 제주신보
  • 승인 202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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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혜 수필가

판공성사 준비로 고해소 앞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옆에 계시던 어르신 자매님이 내 나이를 묻는다.

일흔 여섯인데요.”

참 좋은 나이야.” “?”

요즘 남편과 불편한 관계라 마음이 무겁고 우울하던 때에 그런 말을 들은 것이다. 매우 놀랐지만 묘하게도 금세 내 마음에 불이 켜지며 화안해졌다. 그래, 좋은 나이래, 좋은 나이답게 살아야해. 나는 고백소에 들어가기도 전에 남편에게 무언의 화해를 보냈고 마음도 다 풀어졌다. 말 한마디의 연금술이었다.

예전엔 노년에 이르면 인격자가 되어 저절로 관대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작은 일에도 삐치고 옹졸하기 짝이 없는 노추가 내 마음에 서성거린다. 이상하게도 남들에겐 너그러운 데 바로 옆에 있는 남편에게는 말 한마디로도 각을 세울 때가 있다.

내게 참 좋은 나이라고 말 해 준 자매는 여든 다섯으로 이가 다 빠지고 허리는 많이 굽어 보행도 쉽지 않아 지팡이에 의지하는 분이다. 그럼에도 얼굴에는 악이라곤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선한 웃음만 가득하다. 그분을 누가 건드릴 일도 없지만 혹시 누가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해서 마음이 돌변할 것 같지도 않다. 말하자면 그분은 이제 한 알의 밀알이 다 썩어 버린 듯 보인다.

언제면 나의 밀알은 완전 썩어버릴까. 다 썩어야 변화가 있을 것 아닌가. 이 나이까지 자존감을 앞세워 아우성치는 건 무슨 심산인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잘했군, 잘했어.’ 란 노래이다.

마누라!, 왜 불러요?

외양간에 매어놓은 얼룩이 황소를 보았소?”

보았죠.” “어쨌소?”

친정집 오라비 장가갈 밑천에 주었죠.”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 했어, 그러게 내 마누라지.”

영감!, 왜 불러?, 뒤뜰에 뛰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

보았지” “어쨌소?”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 하려고 먹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부부 사이가 이쯤이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지난 날 남성 중심 사회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던 우리 팔십 대 남편들은 과거 주름잡던 시절을 그대로 옮겨 살고 있다. 은연중 대접에 익숙한 남편들이 의외로 많다. 따져 보면, 아무리 여성상위 시대가 판친다 해도 그건 그들에게 웃기는 일이다.

육십 년 가까이 소설보다 더 소설처럼, 저 노래처럼 살다가, 최근에 남편을 노환으로 보낸 여고 동창이 있다. 한 반이었으며 내 바로 뒤에 앉아서 공부하던 수재(秀才)였다. 사제지간이던 그 친구 내외는 숫한 화제를 뿌리며 평탄치 않게 시작했다. 양가의 반대, 나이 차이, 곱지 않은 시선과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을 안고 반세기 넘게 잘 살았다.

그 남편은 은퇴하고 30여년을 잘했군, 잘했어.’ 부부처럼 살았다. 그녀 말이 자기들 부부는 두 몸이되 한 몸, 한 마음으로 살았다 했다. 허나 옥에도 티가 있다고 그 남편은 주사(酒邪)가 있었다. 그럴 때 그녀가 포악을 떨었다고 말했다. 요즘 그 것이 마음에 걸려 두문불출하며 가슴을 치며 비탄에 잠겨 지낸다.

그녀가 남편 임종을 맞으며 6시간 동안 남편에게 해 드린 행동은 참으로 한 편의 시와 같다. 새벽 마지막까지 남편을 붙들고 기도하며 성가도 불러드리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그녀는 와인을 자기 입에 넣고 숨이 넘기 직전에 남편 입에 네 번이나 넣어 드렸다. 넘기는 소리를 들었다 했다.

전화만 걸면 눈물에 젖은 그녀에게 나는 말해 주었다.

친구야, 그래도 지금 좋은 나이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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