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이름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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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유행성 질병은 대개 첫 발생지의 이름을 따서 불렸다. 1833년 중앙아시아 독감을 시작으로 1888년 중국 독감, 1957년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 독감, 1977년 소련 독감 등이 대표적이다. 에볼라바이러스는 콩코민주공화국의 에볼라강에서, 지카바이러스는 우간다의 지카숲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2015년 한국에서 38명의 사망자를 낸 메르스도 풀어쓰면 ‘중동 호흡기 증후군’이다.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된 뒤 중동지역에서 집중 발생해 이런 명칭이 붙여졌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은 예외적인 사례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국 스페인 언론만이 전염병 사태를 상세히 보도해 이 병의 존재를 알게 됐다. 스페인 독감은 진실 보도의 대가로 명명된 고약한 결과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년 새로운 전염병의 ‘작명(이름 짓기)’ 원칙을 세웠다. 특정 지역이나, 사람 혹은 동물 이름, 직업군을 병명에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해당 지역과 민족, 종교 등에 미칠 부정적 영향, 낙인 효과를 막기 위함이다.

최근 창궐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도 ‘중국 폐렴’과 ‘우한 폐렴’을 거쳐 ‘코로나19’로 불리기까지 수차례의 개명 과정을 겪었다. 정부는 특정지역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WHO의 권고에 따라 이름을 ‘코로나19’로 바꿨다고 설명한다.

병명 정정에 대해 보수 성향 쪽은 ‘중국 눈치보기’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반면 중국 혐오를 멈추라며 신종 코로나로 고쳐 쓰는 편은 ‘미국 독감’이란 말을 거침없이 쓰고 있으니 실로 요지경 속이다.

▲WHO의 권고를 근거로 지역 혐오에 맞섰던 정부가 마음을 달리 먹은 걸까. 며칠 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대구 코로나19’로 지칭해 대구 시민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제목을 줄이다 발생한 실수라고 해명하며 사과했다. 중국을 의식해 ‘우한 폐렴’이라고 쓰지 말아 달라고 언론에 요구했던 정부다. 대한민국 정부가 맞나라는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전염병 작명에 정치가 개입하면 남 탓하려는 비겁한 떠넘기기와 맞불 공세가 오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중국을 배려한 정치적 코드 작명이란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전염병 이름 짓기를 둘러싼 코미디는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중요한 건 그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될 그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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