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욕기생(愛之欲基生)
애지욕기생(愛之欲基生)
  • 제주신보
  • 승인 20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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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전애, 변호사/논설위원

필자는 어릴 때부터 병원에 자주 다녔다. 소아과, 안과, 치과... 하루에 두세군데씩 병원을 가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건, 필자의 어머니는 진료가 끝나 약까지 다 처방을 받고 병원 문을 나서기 전 어린 필자를 꼭 다시 진료실 앞에 다시 세우셨다.

이후 진료 중이던 환자가 나오면 필자를 잠깐 진료실로 다시 들여보내서, 필자가 직접 의사 선생님께 오늘도 감사하다고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하도록 시키셨다.

법학과 대학생 시절 어느 날 교수님께서 변호사는 선비 ‘사(士)’를 쓰고 의사는 스승 ‘사(師)’를 쓰니까 의사는 ‘선생님’이 맞지만 변호사는 아니라고 말씀하시는걸 웃으며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애지욕기생(愛之欲基生)’, 사랑은 그 사람을 살게끔 하는 것이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필자가 느끼기에 이러한 사랑이, 사랑의 최고 단계인 것 같다. 아이를 키워내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것이다.

대구 경북 지역의 위급한 상황을 돕기 위해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여들고 있는 의료인들이 있다. 내가 의료인이라면 스스로 그 곳에 가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의료인의 가족이라면 내 가족을 그 곳에 순순히 보낼 수 있을까. 대답하기 어렵다.

전 세계를 뒤덮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의료인들이 보이는 인류애 적인 모습을 보며, 어릴 적 왜 필자의 어머니께서 의사 선생님께 단지 인사를 시킨다고 필자를 굳이 진료실 문 앞에서 기다리게 하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대학시절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선생님’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의 상황에서 의료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아이를 키워내는 어머니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그 사랑과 희생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의료인이 아닌 우리들도, 모두 많이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침잠해 가고 있다.

언젠가 끝이 있을 것이란 희망도 가져보지만, 그 끝이 언제일지 몰라 답답하고 우울한 날들이 계속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로 손 씻기, 기침 예절 같은 일상의 습관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방면으로도 확장해 나갔으면 좋겠다.

이번 상황을 오히려 긍정적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바이러스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가는 것을 보며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연결되어 있으니, 우리는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의료인이 아닌 우리도, 우리의 방법으로 서로가 살게끔 할 수 있다.

마스크가 모자란 상황에서 나보다 먼저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나는 마스크를 사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SNS 캠페인을 보며, 우리가 우리 대한민국이 그동안 많이 성숙해왔구나 우리가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구나 새삼 느낀다.

폭동도 없고 새치기도 없고 도둑질도 없는 이 상황을 우리는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일상의 작은 것들이 얼마나 반짝이는 의미가 있었는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들의 일상은, 우리가 서로를 살게끔 하는 더 따뜻하고 다정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들이 이번 상황을 겪으며 더 나은 세상 서로를 살게끔 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의료인들의 희생에 감사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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