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영웅
이름 없는 영웅
  • 제주신보
  • 승인 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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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 수필가

벚꽃이 한창이다. 역병도 한창이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라 낯설고 두렵다. 마스크 쓰기와 거리 두기 또한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나와 너를 생각하자면 피로감이 문제가 아니다.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게 아닌가. 더구나 타인에게 영향을 준다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세계는 풍랑의 바다에서 흔들리는 한 배에 탄 운명이 되었다. 어떤 사람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병균은 부자나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를 가리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만 명이 넘었단다. 전쟁을 치른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은 희생자가 속출하였다. 마지막 순간조차 가족의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저 세상으로 간 것이다. 심지어 장례식도 생략된 채 화장되는 것은 참으로 처참한 일이다. 성당이나 아이스링크에까지 들어찬 관들을 보며 인간의 존엄함이라는 말은 얼마나 가벼운 것인가를 느꼈다. 세상은 휴지처럼 구겨진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라는 현자의 가르침의 적절한 시각은 바로 지금이 아닐까.

3월 마지막 주 일요일, 완연한 봄기운 가운데 벚꽃이 만개한 사라봉을 걸었다. 가족 단위 상춘객이 많다. 유치원이나 학교도 폐쇄되어 그런지 어린이들도 많다. 사라봉 가는 길목에 위치한 국립제주박물관, 우당도서관 등 공공기관이 모두 문을 닫았다. 재난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럴까.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임시 폐쇄’라는 안내문을 보는 마음은 혼란스럽다. 더불어 걱정도 된다. 도서관의 책도 반납하지 못한 지 꽤 되었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상이 지금은 특별한 것이 되어 버렸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사라봉의 벚꽃보다 아름답고 곱다. 뚜벅뚜벅 혼자 걷는 사람, 아빠가 사진을 찍어 줄라치면 자동으로 V자를 그리는 앙증맞은 손가락의 주인공,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산책하는 이들이 참으로 정겹다. 재잘거리는 아이들 여럿을 보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꽃잎이 흩날려 길바닥은 온통 꽃길이다.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봐도 꽃, 아래를 봐도 꽃 세상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세상은 얼룩져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짙은 어둠을 몰고 들이닥친 거대한 파도는 언제쯤 잠잠해질 것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27일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텅 빈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에서 인류를 위한 특별 기도를 올렸다. 비 내리는 광장을 혼자 걸어가는 모습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전 세계 1,100만 명이 동시에 시청했다는 이 영상에서 교황은 “저희를 돌풍의 회오리 속에 버려두지 마소서.”라고 기도했다. 비탄에 빠진 인류의 구원을 간절히 청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만과 짜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가격리 상태에서 훌륭한 모범을 보인 이들이 있다. 고사리손으로 마스크와 용돈을 기부한 어린이도 있었다. 몇 개의 마스크와 삐뚤빼뚤한 손편지는 얼마나 큰 감동을 주었던가. ‘영웅’은 미스터 트롯의 진을 차지한 사람의 이름만은 아니다. 선한 영향력으로 사회를 움직인 사람, 그가 바로 영웅이다.

몸을 사리지 않는 현장의 의사와 간호사, 익명의 기부자 등 모두 이름 없는 진정한 영웅들이다. 대한민국과 세계가 이 시국을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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