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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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제주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논설위원

모든 것이 정지되어 버린 느낌이다. 코로나19는 개인의 삶의 패턴을 바꾸는 것을 넘어 이제 우리 사회를 온통 삼켜 버리는 듯하다. 지역의 경제가 점차 악화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길거리의 사람들의 표정은 근심으로 가득 차 있다. 평소 관광객들로 북적였던 식당의 사장이 텅 빈 테이블을 바라보며 내 뱉는 한탄의 목소리가 참으로 처량하다. 자영업자를 비롯하여 소상공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날이 갈수록 심각하여 여기저기서 불만 가득한 소리가 들려온다.

문을 닫은 교육 기관들은 언제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대학에서도 온라인을 통해 비대면 강의를 한 달 넘게 하고 있지만, 강의의 질이나 교육의 효과 면에서 유용한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나름대로 온라인 강의 자료를 준비하여 학생들에게 내용을 이해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수강하는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썩 편하지 못하다. 뭔가 더 알고 싶어도 묻고 대답하는 것이 대면 강의보다 못해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저 학생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마감할 시점에 이번 학기 만큼은 제자들에게 더욱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이전보다 더 열성적으로 학생들의 기억에 남을만한 강의를 해보았으면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온라인으로만 접촉하는 감동 없는 일과를 보내고 있으니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학생들이나 동료들과의 마음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 가는 것도 가슴 아프다. 대신에 이번 기회에 그들과의 인간관계와 진심 어린 소통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이처럼 단절되고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경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 이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셸리(Shelley)가 쓴 ‘서풍에 부치는 노래’(Ode to the West Wind)란 시의 맨 마지막 구절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봄을 몰고 오는 부드러운 서풍의 신인 제피로스가 등장하듯이, 서풍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에 부는 온화한 산들바람이다. 매서운 북풍이나 무더운 남풍보다 감미롭고 부드러운 바람이다. 물론, 셸리는 그 문장에서 사람의 자유를 억누르는 세상의 상징인 겨울에서 벗어나 구속 없는 자유로움을 누리는 봄의 세계를 뜻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계절상으로는 상쾌하고 고요한 바람이 불어와 겨울의 적막함을 뚫고 라일락 꽃향기 가득 내뿜는 봄이 도래했건만 우리 사회의 봄은 아직도 가까이 오지 못하고 멀리 있다. 코로나의 차가운 추위로 아직도 온화한 바람은 불지 않고 있다.

영국의 시인 겸 비평가인 엘리어트(Eliot)는 ‘황무지’라는 작품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말했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문명의 얼어붙은 땅을 뚫고 강인한 생명력이 솟아오른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그에게, 겨울은 모든 것이 잠들어 고요하고 죽은 땅과도 같은데, 4월이 되어 꽃이 피고 봄비로 잠든 뿌리가 깨어나니 4월이 참으로 잔인하게 비쳐졌던 것이다.

지금은 차라리 엘리어트의 잔인한 4월이 코로나의 매서운 4월보다 더 그리운 시기이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 미증유의 코로나 사태가 하루빨리 종식되어 감미로운 봄기운이 우리 사회 곳곳에 가득 감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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