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의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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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시인·수필가·前 애월문학회장

봄이 뻐근하다. 봄볕이 따스한 돌담의 고샅길을 어슬렁거린다. 동백의 선홍빛 꽃잎이 각혈처럼 어지럽게 흩어진 고샅길. 4·3의 슬픈 영혼들이 떠오른다. 며칠 동안 가랑비와 보슬비가 갈마들며 흩뿌린 탓이다. 나뭇가지에 여린 잎들이 아가들 젖니처럼 우우우 돋아난다. 천지가 온통 연둣빛 풀물들이다.

이맘때쯤이면 장사익의 ‘봄날은 간다’가 가슴이 저러 온다. 그의 리메이크 노래 ‘봄비’가 이어지고, 피를 토하듯 ‘찔레꽃’ 노래가 울려 퍼진다. 왜 그는 찔레꽃을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럽다고 했을까. 광대 같은 그의 지난온 밑바닥 삶이 두고두고 서러웠을까.

아직 그의 봄노래는 내 가슴속에 끝나지 않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퍼 올린 듯한 말간 슬픔은 ‘꽃구경’에서야 비로소 끈적끈적한 진액으로 배어나온다. 김형영 시인의 ‘따뜻한 봄날’이라는 시를 제목만 ‘꽃구경’으로 바꿔 불렀다. 그 옛날 부모가 늙고 병들면 깊은 산속에 버리던 풍습 고려장(高麗葬)을 애틋하게 그렸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제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봄구경 꽃구경 눈감아버리더니/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가는 길 바닥 뿌리며 가네.//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하시나요./솔잎을 뿌려서 뭐하시나요.//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명치 아래에 뜨거운 뭔가가 후욱 올라온다.

제주의 4월, 72년 전 봄에도 고샅길의 동백과 우영밧 노란 장다리꽃은 피었지만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한 어머니는 아기를 꼬옥 안은 채 숨졌지만 젖가슴에 매달려 젖을 빠는 비극적인 모습, 서청 출신 경찰 ‘정’ 주임으로 불린 정용철의 그 악명에 몸서리치게 한다. 도피자 가족을 경찰서로 끌고 가 모진 고문을 했다. 젖먹이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죽으면서도 끝까지 젖먹이를 안고 쓰러졌다. 죽은 엄마 위에서 바동거리자 소총에 꽂혀있는 대검으로 아기를 찔러 위로 치켜들며 위세를 보였다는 비극적인 목격담이다.

가슴이 먹먹하다. 창자가 울컥 쏟아질 것 같다. 아들의 등에 업히어 가는 고려장의 어머니, 죽음의 순간에서도 새끼를 포기 않는 어미들. 장사익의 어머니 ‘꽃구경 가요’를 들으면서 필자는 소리 죽여 진한 속울음을 운다. 반주없는 생목으로 부르는 게 절창이다. 구뜰한 묵은지 맛이다.“엄니, 지금 머 훠신대유~!” 어눌한 그의 충청도 홍성 광천 촌사람 말도 그대로 가슴을 후벼 판다.

봄밤은 짧아서 슬프다. 동백이 꽃잎 하나 시들지 않은 절정의 순간에 후드득 떨어지고, 봄꽃이 쉬이 져서 서럽다. 그래서 시인들은 ‘봄날은 간다’에 필이 꽂힌다. ‘봄날은 간다’를 부르면 그냥 목이 멘다. 어디 시인들만 그럴까. 아니다.

너븐숭이 애기 돌무덤에 울부짖는 어미의 슬픈 영혼을 보라! 4·3 위령비를 어루만지는 산자의 슬픔을 보라! 제주의 봄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를 흥얼대며 시작되고, 봄나~알은 가아~ 안다를 울부짖으며 끝나지 않을까. 4월의 봄날은 속절없이, 가뭇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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