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뒤편, 정찬일
‘이 봄비 그치면 취우 속에 가만히 들어 몸으로 번지는 비취색 나뭇잎 하나 배후로 삼아 한 밤 한 낮을 꼬박 잠들겠습니다’(시 취우 中)
정찬일 시인은 60여 편의 시를 모은 세 번째 시집 ‘연애의 뒤편’을 최근 펴냈다.
1998년 ‘현대문학’에 시가,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돼 시인으로, 소설가로 문단에 선 뒤 운문과 산문을 아우르며 작가의 길을 충실히 걸어온 그는 시 ‘취우(翠雨)’로 2018년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유년 시절 이후 줄곧 제주에 깃들어 살아온 그는 제주의 아린 상처를 간직한 4·3의 흔적들을 더듬어 그림자에 어린 진실을 밝히는 일에 시인으로서의 인생을 걸었다.
4·3으로 잃어버린 마을 ‘삼밧구석’의 슬픔과 아픔을 서정적으로 표현하는 한편 치유의 과정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는 평을 받은 시 ‘취우(翠雨)’는 계절마다 시간마다, 수십번씩 삼밧구석을 찾아가 그 터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골똘히 들여다보며 침잠한 끝에 건져 올린 작품이다. 시리고 아린 4월의 봄, 시적 성취와 함께 치유의 덕목을 고루 갖춘 그의 시편들을 더듬으며 바람과 울음, 그 소리에 비낀 4·3의 슬픔 쪽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 볼 수 있다.
문학수첩 刊,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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