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들녘의 풍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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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 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녹색 잎에 도란도란 이슬이 맺힌 아침이다. 마치 수정같이 맑고 맑으니, 날아갈듯한 기분이 든다. 바지런한 벌들이 얼굴만 씻는 게 아니라 마음도 씻어내는 청정이다.

살랑대는 바람에 하얀 손수건을 흔드는데, 노란 꽃술에 대고 부끄러움도 없이 키스를 하고 있는 일벌들, 향기에 취해 재주를 맘껏 부리는 몸짓을 보면, 재롱둥이 손녀가 주름진 할머니의 얼굴에 뽀뽀 하는 모습을 닮았다.

쉼 없이 날아오고, 날아간다. 한량없는 마음이 단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들장미를 한참동안 바라보노라니, 서운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에 눈길이 간다.

조롱조롱 매달린 하얀 꽃, 만개한 꽃이 탐스러워 돗자리를 깔아 눕고 싶다. 그 때 실바람이 불어와 내 입에다 꿀을 떨어뜨릴 것 같은 기분, 상상만 해도 아카시아 꽃이 활짝 핀 길은 혼자 걷기엔 과분하다. 이 마음을 나누면, 세상은 참 살만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슴 속이 훤해지고, 나누고 난 빈 가슴은 어느새 행복이 가득해 도로 충만해진다.

눈꽃 송이처럼 곱디고운 그 하얀 마음의 꽃은 천상의 세계를 향하고 있지 않고, 세속의 세계인 땅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다. 그 미소 속의 깊은 뜻을 무슨 마음으로 헤아릴 것인가.

지난 겨울을 잘 참아낸 보리는 어떤 모습일까. 하얀 눈 속을 헤치며 솟아난 청보리 밭. 어느새 황금물결이 넘실거리는 풍경, 농부의 그리움 마음으로 다가온다.

지난 세월, 이맘때 곳간의 항아리에 곡식이 바닥나 식구들이 하루 한 끼니도 제대로 배를 달래지 못했던 뼈아픔을 너는 기억하고 있으리라. 제주의 사오십 년대 보릿고개를. 그랬었지. 밥 먹자마자 밖으로 달려 나가는 어린 자식보고는 아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지마라 배 꺼질라며 걱정하시던 어머님의 말씀이 가슴을 울립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돼, 몇 가닥 남아 있지 않은 머릿결이 한 가닥, 한 가닥, 밭 돌담 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결에 나부끼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노랗게 익어가는 보리밭의 풍요로움이 황금물결로 너울너울 춤추고 있다. 아이들이 빨갛게 익어가는 산딸기를 따먹는 빨간 입술. 웃음이 절로 솟아난다.

제주의 들녘에 피어난 들장미, 아카시아, 벌의 바지런한 모습, 보리밭의 어머니 마음, 모두가 참 좋은 인연을 맺고, 은혜로 가득 채우는 계절이 아닌가.

코로나19’로 어렵고 힘들고 지친 마음들이 힘과 용기로 다시 싹을 돋게 하는 5월의 풍요로운 발걸음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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