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복권’
‘코로나 복권’
  • 제주일보
  • 승인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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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직장에서 정리해고된 가장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쉽게 찾은 곳이 산이다. 가족에게도 실직 사실을 숨기고 출근한다고 말한 후 산으로 갔다. 이 과정에서 나온 말이 ‘IMF 심마니’다. 이왕 산에 왔으니 그냥 소일할 것이 아니라며 한푼이라도 벌기 위해 약초를 캐는 이들이 많았다. 산에서 살길을 찾고자 한 것이다. 이를 고려해 당시 서울의 한 한의과대학은 무료 약초교실까지 개설했다. 그러자 100명 정원에 1000여 명이 신청했다. 실직사회의 한 단면이었다.

산행객이 늘면서 국내 아웃도어 업체들은 특수를 누렸다. 제주 출신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은 ‘블랙야크 사사(社史)’를 통해 등산화와 등산복이 잘 팔려나가 IMF도 모르고 지나갈 정도였다고 했다. 형형색색의 등산복이 인기를 끌면서 산행에 패션 시대가 펼쳐진 것도 이때부터다.

▲정부가 내년에 총 5조6914억 원어치의 복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올해보다 7.4% 증가한 것이다. 복권기금 수익도 올해보다 8.6% 늘어난 2조2070억원으로 예측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개의 경제 통계 수치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실 복권은 대표적인 불황형 상품이다. 경기가 나쁠수록 구매자가 증가한다. 코로나 확산이 정점이던 2~3월에 대구·경북 등에서 잠시 매출이 감소했으나 곧 전년 수준이 됐다. ‘회복탄력성’이 그만큼 높다.

예로부터 복권 발행은 자금 조달과 관련이 깊다. 그 효시도 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복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복권을 팔고 당첨자에겐 노예, 집, 배 등을 주었다는 기록에서 찾는다. 근대적인 형태의 복권은 1530년대 이탈리아 피렌체 지방에서 발행된 로또(Lotto)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때 군수산업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그들의 점령지역에서 ‘승찰(勝札)’이라는 것을 발행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인 ‘올림픽 후원권’도 해방 후 대한올림픽위원회가 런던올림픽 참가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은 각자가 스스로 제 길을 찾는다는 뜻이다. 원래 조선 시대 대기근이나 전쟁, 전염병 등 어려울 때 백성들이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서민의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복권에 돌을 던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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