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 전 4·3당시 옥살이를 했던 생존수형인 8명의 2차 재심 청구에 따른 첫 심문이 열렸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수형생활을 한 송순희씨(95·여) 등 8명의 재심 청구에 대한 첫 심문을 15일 진행했다.
이들 중 송석진씨는 지난 4월 94세의 나이로 일본 도쿄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특히 김두황씨(92)는 군사재판이 아닌 유일하게 일반재판을 받고 옥살이를 했다. 일반재판 수형인의 4·3재심 청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씨는 1949년 4월 제주지방법원에서 ‘내란죄’ 혐의로 징역 1년이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경찰 지원조직인 민보단에서 활동했던 그는 되레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의 일반재판 판결문에는 그가 남로당 명단에 포함됐지만, 이는 같은 마을 청년이 고문에 못 이겨 허위로 진술해 억울한 누명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전과자로 낙인찍혀 70년 동안 고통을 겪고 살아왔다”며 “재판정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이야기 하겠다”고 말했다.
재판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생존수형인 김정추씨(89·여)는 “오랫동안 말도 못하고 이대로 살다가 죽는 줄 알았다”며 “억울한 한을 이제라도 풀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첫 심문에서 군사재판 생존수형인은 재판정에서 직접 증언을 하지 않고 이들의 증언을 영상에 담은 CD를 증거로 제출토록 했다.
반면 일반재판 생존수형인인 김두황씨의 경우 검찰이 반대 신문이 필요다고 밝히면서 오는 7월 13일 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4·3도민연대(대표 양동윤)에 따르면 4·3당시 제주와 광주·목포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일반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한 수형인은 1310명이다.
일반재판 수형인들의 판결문을 보면 대부분 살인과 방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공판조서에는 언제 어디서 누구를 죽였거나 불을 질렀는지 날짜·장소·대상은 기술되지 않았다.
더구나 이들은 살인·방화 혐의에도 불구, 구형법 77조의 ‘내란죄’가 적용돼 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이날 개별 소송을 제기한 고(故) 김호근씨(1928년생)와 고(故) 장동석씨(1929년생)의 심문도 진행됐다. 김호근씨는 군사재판에서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하던 중 행방불명됐다.
장동석씨는 제주제일중 학생이던 1948년 포고령 위반으로 일반재판에 기소됐지만 풀려났고, 1955년 다시 기소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