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산읍에 사는 고교 동창을 1년 만에 만나 회포를 풀었다. 술자리에서는 제2공항 건설보다 비자림로 확장이 안주거리가 됐다.
병세가 악화된 노약자나 갓난 아기가 앓게 되면 제주대학교병원 등 시내권 병원에 가야 하는데 성산읍에서 병원까지 최단 거리는 비자림로를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10년 전부터 이 길을 이용해 성산읍은 물론 구좌읍 중산간 마을의 응급환자들을 이송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갓길조차 없는 편도 1차로가 문제였다. 몇 년 전 사경을 헤매던 70대가 119구급차에 실려 비자림로로 갔다. 하지만 앞에 트랙터에 이어 대형트럭이 막고 있어서 응급실까지 가는 데 시간이 지체됐다. 겨울에는 살얼음이 자주 생겨 급하게 달리던 차량은 도랑에 빠진다고 했다. 1분 1초가 아까운 응급환자를 위해 비자림로는 확장돼야 한다는 게 동창의 지론이었다.
비자림로 확장·포장 공사는 대천교차로~금백조로 들머리까지 2.94㎞ 구간을 너비 22m(왕복 4차로)로 확장하기 위해 2018년 6월 첫 삽을 떴다.
‘비자림로(路)’ 명칭과 달리 이곳엔 비자나무 대신 삼나무가 있다. 계획대로면 2160그루를 베어내야 하지만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나오면서 916그루만 벌채 후 2년째 공사가 중단됐다.
지난 5월 말 공사가 재개됐으나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벌채 작업은 잠정 중단됐다.
환경단체는 삼나무숲 훼손과 법정 보호종 동·식물 서식지 파괴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삼나무는 제주 자생종이 아니라 1924년 일제가 들여온 수종이다.
일본이 원산지이지만 온난하고 습한 기후 덕분에 삼나무는 제주에서 더욱 잘 자랐다. 1970년대 녹화 사업에서 삼나무는 권장 수종이었다. 10년이 되기 전에 20m 이상 자랄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빨라 제주사람들은 삼나무가 쑥쑥 자란다는 뜻에서 ‘쑥대낭’이라 부른다.
세찬 겨울바람을 막기 위해 감귤원 경계마다 어김없이 삼나무가 식재됐다.
그런데 삼나무는 장점보다 단점이 부각됐다. 봄이 오면 재채기, 콧물,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알레르기 환자가 늘었다. 제주지역에서 알레르기 비염과 아토피 피부염 발병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이유로 삼나무 꽃가루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삼나무는 쌀알 크기의 꽃 한 송이에 1만3000개의 화분이 생산될 정도로 엄청난 꽃가루를 날린다.
곧게 뻗는 삼나무 특성상 조밀하게 심다보니 생태계 다양성을 해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제주도와 양 행정시는 수년 전부터 인공 조림된 삼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편백나무, 황칠나무, 고로쇠나무 등 자생종을 심어 생태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다. 2006년 한라산 성판악 일대에 3400여 그루의 삼나무를 베어낸 뒤 식물 종수가 2~3배가량 늘어나는 등 고유 생태계가 회복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비자림로 주변 역시 삼나무의 밀식 조림으로 생태계 다양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나무가 빽빽이 식재돼 다양한 식물종이 서식할 여유 공간조차 없을 정도다.
제주지역 삼나무숲 면적은 6000㏊에 이른다. 감귤원 방풍림으로 심은 삼나무는 바람을 막아주기는 했지만 햇빛을 가려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경제수종으로서의 가치도 떨어졌다. 인공 조림된 삼나무를 베어내면 대부분 어(漁)상자로 만드는 이유다. 일본이 원산지인 삼나무를 30~50년 전 인공 조림으로 줄지어 심다보니 산림녹화는 빨리 됐지만, 나무로서의 가치와 생태계 다양성은 떨어졌다.
이런 삼나무를 지키는 것보다 생명의 촌각이 달린 성산·구좌읍지역 응급환자를 곧고 넓게 펴진 비자림로로 신속히 이송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좌동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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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반이상 진행되어 보기 흉하던데 길도 넓히고 가로수도 이쁘게 심어 언능 정리가 되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