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위해 목숨 바친 소년병 잊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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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병 6·25참전유공자 유족 진성준씨

“아직 어린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은 같지만 학교를 다니다 징집된 학도병과는 달리 그 숫자가 많지 않았던 소년병들은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이들의 숭고한 희생이 잊혀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6·25참전유공자 유족인 진성준씨(63)는 소년병으로 6·25전쟁에 참여했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1950년 9월 16세의 어린 나이로 군에 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했던 진씨의 아버지는 뛰어난 전공으로 1952년 훈장을 받았지만 이듬해인 1953년 금화지구 전투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었고, 그 후유증으로 전역 후 5년 만인 1958년 숨을 거뒀다.

태어난 직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던 진씨는 차후 참전유공자 등록을 위해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진씨는 “아버지가 입대 할 당시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학교를 다니지 않으셨기 때문에 학도병이 아닌 소년병으로 입대를 하셨다”면서 “제주지역은 학도병을 참전한 이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소년병은 그 숫자가 많지 않았고, 관련 기록도 거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실제 제가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찾는 과정에서 다른 소년병들에 대한 기록을 확인해 유족들을 찾아뵌 적이 있는데 그분들은 자신들이 참전유공자 유족인지도 모르고 있었다”며 “올해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한 만큼 소년병들이 더 이상 잊혀지지 않도록 국가가 직접 나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진씨는 참전유공자와 그 유족들을 관리하는데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씨는 “참전유공자 등록과는 다르게 상이군경 등록은 유족들이 직접 증거를 제시해야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50년이 지나서야 겨우 등록할 수 있었다”며 “그런데 육군본부에는 아버지 부상에 대한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진씨는 “만약 상이군경 등록 당시 보훈청이 조금만 신경써 줬다면 큰 어려움 없이 등록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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