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화가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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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논설위원

시민은 미술관의 전시가 주요 관심사지만 화가는 미술관의 소장품에 더 주목한다. 시민은 다양한 기획전을 보며 정서적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반면, 화가에게는 미술관이 새로운 화풍을 찾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화가는 평생 창작이라는 짐을 지고 명작을 그리기 위해 산, 바다, 들판 등 여러 곳을 찾아다니지만, 그곳은 창작 소재를 발굴하는 1차적인 장소일 뿐이다. 미술관 소장품은 화가가 주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소재의 구성, 색채, 표현기술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래서 고금의 많은 화가들이 미술관을 훌륭한 화업의 장소로 여겼다.

만종의 화가 밀레는 프랑스 농촌 출신으로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밀레의 아버지는 무셀이라는 화가에게 밀레의 미술 수업을 맡겼다. 그때 밀레의 나이 스물 한 살이었다.

밀레는 간섭하지 않는 무셀의 자유로운 교육 덕분에 주로 그 지역 미술관에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 후 밀레는 장학금을 받고 파리에서 에콜드 보자르의 폴 들라로슈 화가에게 유화를 배우지만 만족할 수 없었고, 루브르미술관에서 미켈란젤로, 푸생 등 대가들의 작품을 보며 그림을 그렸다. 밀레의 낮잠은 고흐가 수없이 모사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 또한 루브르 미술관에 전시된 루벤스, 벨라스케스 등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했다. 마네는 작품 올랭피아가 매춘부를 그렸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그가 동경하던 스페인으로 떠났다. 후일 고야의 작품 ‘180853에 감동을 받은 마네는 고야의 작품과 같은 구도로 막스밀리안 황제의 처형을 그렸고, 미술관에서 이들 작품을 본 피카소가 다시 같은 구도로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렸다.

앙리 루소는 27살에 말단 세관 공무원이 돼 생활이 안정되자 이듬해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체계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다.

루소는 어느 화가의 추천으로 루브르 미술관, 뤽상부르 미술관, 베르사유 궁전과 생제르맹 궁전 등에 있는 고전 회화를 모사할 수 있었다. 그는 동물원, 식물원, 박물관, 미술관을 다니며 독학으로 화가가 된 독특한 인물이다. 미술 학위는 받지 않고, 오히려 프랑스 문학과 음악 아카데미에서 학위를 받고 평생 바이올린 연주를 즐겼다.

루소는 조르주 쇠라가 주도한 제1회 앙데팡당전에 출품해 화가의 이력을 쌓았다. 앙데팡당전은 화가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독립전시회였다.

루소는 매년 이 전시에 참여해 비평가들로부터 르네상스 이전의 이탈리아 그림과 비교된다는 평을 받았고, 차차 독창적인 화풍으로 주목을 받았다. 1893년 루소는 23년 동안 재직했던 세관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오늘날 아마추어 화가들이 매주 일요일에 모여 그림을 그린다는 뜻에서 생긴 일요화가회라는 말도 루소로부터 시작됐다.

미술관은 그 나라, 그 지역의 문화적 수준을 말해주는 공간이다. 미술관 소장품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 역사 전체의 시간을 머금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미술관은 작가, 시기, 장르, 특성 등에 따른 뛰어난 소장품을 신중하게 수집해야 한다. 미술관은 시민과 화가들이 언제나 즐겁게 찾고 배우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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