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특별법 개정에 서둘러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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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편집부국장

“진실을 밝힌다 해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니지만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역사에 바른 기록을 하는 것은 양심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의무이다.”

2000년 1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서명하면서 4·3관련단체 대표들을 격려하면서 한 말이다.

그 후로 20년이 흘렀다.

정부는 2003년 발행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서 우리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많았던 참으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고 서술했다.

4·3위원회는 현재까지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희생자 1만4532명, 유족 8만451명을 선정했다. 4·3평화공원이 조성되고, 국가 추념일이 지정됐다.

하지만 이들의 상처 치유와 명예회복을 위해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희생자에 대한 보상, 군법회의 확정 판결 무효화 등이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제주지방법원 법정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행방불명된 수형인 10명에 대한 재심 청구사건 심문 과정이었다.

100세인 현경아 할머니는 “경찰서에 끌려간 남편이 춥다기에 옷을 가져다 준 이후로 72년 동안 보지 못했다”며 “시신이라도 찾아서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싶다”며 울먹였다.

김을생씨(86)는 “아버지가 끌려간 후 어머니까지 경찰서에 불려가 전기고문을 받은 후 3살 난 남동생에게 젖조차 물리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상하씨(85)는 “형님이 입산했다는 이유로 조부모와 부모, 형제, 조카까지 8명이 총살당했다. 산에 갔던 형님은 자수를 해서 내려왔는데 사형을 당해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처럼 70년 넘게 피맺힌 한을 풀기 위해 국회에 4·3특별법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정부가 신중 또는 부정적 입장을 내놓았고,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끝내 폐기됐다.

21대 국회에 다시 제출됐지만 성사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행정안전부는 4·3 희생자 보상금 지급과 관련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며 국회로 공을 넘겼다. 또 군법회의 판결 무효화에 대해서는 사법부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 기존의 형사소송법 상 재심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국정과제이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여당과 정부, 청와대가 합심하는 당정청 협의가 절실해지고 있다.

아울러 야당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역시 야당의 당론을 모으는데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어야 한다. 여야가 국회에서 결단한다면 정부가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거부할 명분은 사라질 것이다.

4·3 희생자와 유족들도 보상금을 비롯한 개정 요구 사항에 대해 이견을 줄이고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전국 광역의회도 연대에 나서고 있다.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는 지난 12일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라며 “국회는 4·3특별법을 즉각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좌남수 제주도의회의장은 전국을 돌면서 의회별로 4·3특별법 개정 촉구 건의안 발의를 요청하고 있다. 이미 제주는 물론 서울시·경기도·강원도·충청남도·전라남도의회가 건의안을 발의했거나 본회의에서 채택했다.

이제 국회도 4·3특별법 개정안 통과에 서둘러 응답해야 한다.

자칫 제주가 ‘전국의 1%’에 불과해 정부와 국회가 ‘나 몰라라’ 한다는 오해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고령의 피해자나 유족들에게 언제까지 ‘희망고문’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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