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불평등과 지역균형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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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학, 제주대학교 지리교육전공 교수·박물관장/논설위원

1810년 초가을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만약 벼슬에서 떨어지게 되면 빨리 서울에 의탁해 살 자리를 정하여 문화(文華)의 안목(眼目)을 떨어뜨리지 말거라”라는 가계(家誡)를 남겼다. 철학과 사상, 정치와 경제를 넘나들며 사유의 폭을 확장시켰던 대학자 정약용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문장이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애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데 정약용은 자식의 미래를 위해 서울에서 거주해야 함을 신신당부하고 있다. 당시 조선사회는 서울과 지방의 문명 차이가 심해 궁벽한 시골에 있으면 문명의 교화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정약용은 몸소 느꼈을 터이다.

주지하다시피 중앙집권적 관료 사회였던 조선에서는 모든 기능이 서울로 집중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팔도로 뻗어 내린 도로와 뱃길을 따라 사람과 물자가 몰려들었다.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들어오는 최신의 지식 정보는 서울을 중심으로 유통되었다. 서울은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정보 네트워크의 중심지로서 다른 지역을 압도했다. 이로 인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 보내고, 마소의 새끼는 제주로 보내라”는 말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서울 중심의 공간구조는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해방이 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특히 해방 이후의 급격한 산업화는 서울지역으로의 집중을 가속화시키면서 여러 가지 도시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70년대부터 수도권 인구 분산 정책을 실시하면서 국토의 균형발전을 모색하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으로의 집중은 더욱 심화되었다. 지방의 분권과 자치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의 경우 단시간 내에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급기야 세종시와 지방 혁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지역균형발전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시원치 않은 듯하다.

근자에는 ‘인서울’이라는 신조어가 대학입시와 관련해서 하나의 트렌드로 등장하였다. ‘인서울’은 원래 서울 소재의 대학이라는 의미였는데 서울 소재 대학으로 진학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면서 서울 소재 대학 진학률이 대학입시의 성공을 좌우하는 기준으로까지 인식되었다. 더 나아가 지방에 있는 대학을 소위 ‘지잡대’로 비하하면서 중앙과 지방의 차별까지 나타나는 형국이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물리적 영역을 넘어 인식의 영역까지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국토공간의 불평등 문제는 제주지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인구의 지역적 분포를 보면 지난 30년 동안 제주시 동지역으로 집중이 지속되었다. 제주시 동지역에 대규모의 주택지구가 개발되면서 제주도내 다른 지역의 인구를 흡수하였고 최근에는 육지의 이주민들이 유입되면서 과도한 집중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교통 혼잡, 지가 및 주택가격 상승, 대기 오염, 상하수도 문제 등 집중에 따른 다양한 도시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반면에 인구가 유출되는 주변 지역에서는 젊은 세대의 유출로 인한 농촌 노동력 문제와 지역발전 동력의 상실, 초등학교의 폐교 위기, 각종 서비스 기능의 퇴락, 휴경지의 증가 등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공간은 태생적으로 균등하지 않다. 모든 지역은 각자의 개성이 있으며 서로 다른 차이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지역적 차이가 차별이 되고 더 나아가 불평등이 된다면 인간다운 삶터는 요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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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마공신 2020-09-29 08:26:58
공간은 장소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곳이고, 살아가는 터전이다. 그러기에 공간은 우리와 독립하여 실재한다면, '불평등' 에 관해 논할 이유도 적다. 어디까지나 우리와의 관계로 존재할 때 '공간의 실체'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공간은 태생적으로 균등하지 않다'지만, '고른 마음을 담고 있는 그릇' 같은 곳이길 바란다. 그게 꿈이든, 희망이든 그렇다. 제주도에서도 그랬으면 한다. '인간다운 삶터'를 우리는 갈망하기 때문이다.

2020-09-28 19:27:15
폐교는 가슴 아픈 현실이죠. 젊은이가 사라진 공간.상상하기 싫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