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錢)의 전쟁’, 미국 대선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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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규, 제주특별자치도선관위 상임위원

미국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양성판정으로 대선 정국은 또 다른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지난달 16일 보수성향인 라스무센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트럼프가 역전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하고, 같은 달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의 여론조사에서는 바이든이 여전히 8% 차로 트럼프를 앞서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는 가운데 이제는 누가 당선되느냐 못지 않게 과연 후보자들이 안전하게 선거일정을 마칠 수 있느냐도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번 미국 대선은 주(지역)별 정치성향, 인종문제·코로나19 이슈·무역문제 등 다차원에서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그중에서도 ‘쩐(錢)의 전쟁’이라 할 수 있는 선거자금 역시 관전 포인트의 하나이다.

경제대국답게 씀씀이도 크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캠프는 지난 8월까지 11억3000만 달러를, 바이든캠프에서는 7억3700만 달러를 지출했다고 한다. 후보자 둘의 지출액을 합치면 18억670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대략 2조원 넘게 쓴 것이다. 2017년 대선 당시 우리나라의 대선후보 선거비용제한액이 509억원 정도였으니, 후보자 둘의 선거비용제한액을 합한 금액과 비교해 보더라도 실로 입이 쩍 벌어질 일이다.

미국의 자금모금은 개인뿐만 아니라 각종 기업·이익단체·조합도 정치활동위원회(PACs), 특별정치활동위원회(Super PACs)를 통해 할 수 있고, 기부 외에 모금판매 등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선거자금의 모금 및 지출에 대한 총액규제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부의 주체와 모금방식에 있어서도 규제가 거의 없다.

미국선거가 힘 있는 이익집단의 돈에 지배돼 개인의 소액기부(200달러 이하) 문화는 쇠락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오히려 기본바탕에는 미국시민의 소액다수 기부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뉴욕타임즈(NYT)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캠프는 지난 7월 한 달간 8200만 달러를 모금했는데 그중 78%인 6400만 달러가 소액기부자인 개인이 낸 돈이라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미국의 최근 선거를 보면 평균적으로선거자금의 25%가 기업·단체의 후원금으로, 나머지 75%는 개인의 기부로 이루어지고 있고, 미국인구 10~15%가 선거자금 기부에 동참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액기부(1회 10만원 이하)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부자 익명화, 세액공제 등 선관위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미국 수준에 도달하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현재 우리는 정치에 대한 불신이 전 지구적 현상인 시대에서 살고 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시민의 적지 않은 수가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 불신의 시대를 살면서도 그들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자긍심과 국가에 대한 끝없는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투명한 정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적은 돈이지만 다수가 참여하는 기부문화를 만들어가는 일 역시 주권자로서의 국민이 해야 할 역할일 것이다. 이는 곧, 작은 희망의 씨앗이 결국엔 투명한 정치문화를 형성하는 훌륭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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