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열 알
콩 열 알
  • 제주일보
  • 승인 20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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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시인/수필가)

오늘 쌈은 집에서 키운 콩잎과 상추 잎입니다.”

마침내 우리 콩잎 맛을 보게 되는군요!”

아마 한 달 전 쯤 집사람과 함께 민속 오일시장으로 나들이를 갔었다. 호접란이랑, 한치랑, 갈천 마스크랑 몇 가지를 구입했다. 호떡도 맛보며 시장 구경을 했다. 코로나 사태로 위축되리라는 기대는 기우처럼 보였다. 수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오는 길에 곡류점에서 보리쌀도 구입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친구의 말이 기억났다. 우리 집 사람이 콩잎을 좋아한다는 말을 했더니, 콩 알 열 개만 심으면 집에서 콩잎을 따서 쌈으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주머니에게 콩 알 열 개만 달라고 했더니, 인심 좋은 아줌마는 두 줌을 쥐어 주었다.

집에 와서 집사람은 베란다에 만든 목재 화단을 정돈하고 화훼용 흙을 부어서 터 고르기를 했다. 그리고 빈 터에 콩 알 열 개를 심었다. 바로 이틀이 지나자 조그만 잎이 뾰족이 세상으로 기지개를 폈다. 나날이 마치 시루의 콩나물처럼 자라기 시작했다. 야생의 광야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어서인지 몹시 연약해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자 줄기도 튼튼해지고 잎도 제법 푸르르더니만 오늘 그 콩잎이 밥상에 오른 것이다.

사실 나는 콩잎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비릿한 맛이 조금 거슬리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려서 먹을 것이 없어서 자주 콩잎을 먹어서 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상하게도 어려서 많이 먹었던 것들은 지금은 질려선지 무의식적으로 조금 거리를 두게 된다. 양배추, 무 같은 것이 그렇다. 먹을 것이 없던 어린 시절 양배추 잎이나 무청, 고구마 줄기 등을 주어다가 자주 삶아 먹었었다. 이런 음식들을 보면 입맛이 미리 알고 문을 잠그는 것 같다.

일본에서 최상의 인기를 끌었던 오싱을 보면 주인공이 어려서 무밥을 먹으며 생활했던 장면이 나온다. 이 것을 읽으며 나도 어렸을 때 보리밥에 무를 넣어서 무밥을 해 먹었던 기억이 새로웠다. 모두 보릿고개를 넘으려는 조상의 지혜에서 나온 삶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곤드레밥, 고구마밥, 무밥 등이 모두 많은 식술을 거냥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리라.

얼마 전에 밭담 길을 걸으며 이상한 밭들을 보았다. 자주 걷는 밭길인데 무성히 잘 자라던 콩팥을 갑자기 뒤엎어 갈아 버렸었다. 몇 주 전엔 앞 쪽에 있는 무성한 콩밭이 갈아 엎어져 있었는데 오늘은 제법 많이 자라서 콩 이삭도 충실히 맺은 콩밭을 모두 뒤엎어 갈아 버렸었다. 족히 2, 3천 평은 됨직해 보였다.

나중에 이 분야에 조예가 깊은 분에게 물어 보니 가끔은 밭에 영양분, 즉 비료로 쓰기 위해 심었던 콩을 갈아 뒤엎는다고 한다. 머리로 이해가 되는 듯 했으나 가슴으로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나는 콩 요리를 좋아한다. 두부류와 두유를 즐겨 먹고 마신다. 또 여름철엔 콩국수가 제격이다. 아직은 그래도 서민적인 밭에서 나는 소고기인 콩 음식들은 언제나 친근하게 다가온다.

화분속의 콩들도 이제는 제법 여기 저기 열매가 맺기 시작했다. 열 개 중에 아홉 개는 콩잎을 따먹고, 한 개는 콩을 거두어서 다음 해 심으면 된다는 말이 기억났다. 글쎄 잘 추수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벌써 수많은 벌레들이 콩잎을 공격하여 맹렬히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잎들이 방어기재도 없이 무방비로 공격당하고 있다. 그 고통의 흔적들은 수많은 구멍들로 상흔을 남기면서 몹시도 괴로워하고 있어 보인다. 그래도 충실한 결실을 내면서 보람된 삶을 마치리라는 기대 속에 오늘도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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