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고 떠나라
놓고 떠나라
  • 제주일보
  • 승인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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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논설위원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헛짓만 하더니, 논문 편수를 채우지 못해, 여러 해 동안 승진에서 탈락되었지만, 자기가 무슨 대학자라도 된 양, 입만 벌리면 학자연하는 자가 있어, 그를 보며 구역질이 나곤했더니, 사회에는 더 센 자들이 많다. 저 거만한 걸음걸이하며, 아무 말이나 내지르는 저 주**를 보소.

사회는 꼼수를 부려 남을 속이거나 죽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정글인가?

최고는 단지 한두 명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그의 적이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왕따가 된다. 다수결이 정의라면 그는 사회부적응자가 되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선동꾼이 채우게 된다. 선동꾼은 여론몰이에 능하다. 남들이 비리를 밝히면,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적폐로 몬다.

그렇게 사회는, 정당하게 노력하여 최고의 자리를 점하려는 사람을 외면한다. 진실이 그러하니 “노력하라”고 충고하면 꼰대다.

차라리 눈치껏 주위를 살펴, 유력자에게 꼬리를 살랑거려, 원하는 자리에 앉으라고 가르쳐야 잘 가르치는 훌륭한 교육자이고, 그것이 참교육이다.

이것이 정의가 되는 사회라면, 그것은 사람이 사는 사회가 아니고 개돼지들이 사는 우리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현명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대중을 몰고 다니는 선동꾼이 지도자가 된다.

영원할 것 같던 권력도 때가 되면 무너진다. 그리고 무너진 곳에 홀로 남겨진 권력자에게 기다리는 것은 큰집이다. 그래서 그런 자에게는 아름다운 패배와 승복이란 단어는 없다. 그저 억지를 부리거나 버틸 뿐이다.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그들 소수만의 문제라면 슬프지나 않을 터,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그들의 마수에 걸린 개돼지들도 우리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끝까지 깽깽거리거나 꿀꿀거리고 있다.

사람과 개 돼지는 어차피 언어가 다른 것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펼치며 그들끼리는 옳다고 아무 말이나 해댄다.

때가 되면 물러나야하는 법. 나도 어느덧 퇴직할 날이 눈앞이다. 나설 때면 끝날 때를 생각하며 살던 사람이라 떠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한다. 미련도 없다. 단지 끝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고 다음날이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생각이다.

그동안 큰일은 이루지 못했으나, 그저 나만 놓으면 모든 것이 정리될 수 있는 삶을 살아온 내가 대견하다. 놓으려 해도 후환이 두려워 놓지 못하고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 인생을 보면 안쓰럽다.

내가 대학에 자리를 잡아 흘러간 30년이 하루아침 같거늘, 그까짓 5년이 얼마이며, 4년은 또 얼마인가? 더더군다나 기껏 1~2년밖에 되지 않는 자들까지도, 그 세월이 영원한 줄 알고 자리에 앉아 흔들어대는구나. 흔들어대다 문득 뒷날이 걱정되어, 또 다른 자기를 만들어 두고 싶은 것일까? 때가 되어 떠나면, 자기가 만들어 둔 또 다른 자기가 그 자리에 앉아 자기의 안위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보시오! 당신은 당신의 오늘이 있도록 도와 준 누군가에게 감사하며 살았습니까? 아니라면 당신의 도움을 받은 사람도 결코 당신과 다르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허욕에 들뜨면 한 치 앞도 못 본다더니, 그렇게도 머지않은 미래의 당신 모습을 모른단 말이오. 당신을 지키는 것은 오직 바르게 행동하며 사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없다오.

당신들 이전에 그와 같은 길을 간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거늘, 당신들에게는 닥치지 않을 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오? 이제라도 눈을 뜨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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