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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일보
  • 승인 20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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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전애 변호사/논설위원

2020 프로야구가 모두 끝났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경기 진행은 1년 내내 엉망이었던 시즌이다. 무관중 경기를 마스크를 쓴 채로 해 나간 선수들은 얼마나 기운이 안났을까. 그래도 코로나19가 한국에서 더 기승을 부렸다면 시즌 자체가 중단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쨌든 무사히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두산 베어스의 팬이었다. 집이 잠실 야구장과 가깝기도 해서, 오비 베어스 시절부터 주말엔 부모님과 잠실 야구장에 가곤 했었고, 중학교 이후로는 친구들과 경기를 보러 다녔을 정도였다. 여중·여고를 다녔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교복 입고 야구장을 찾는 여학생 팬은 당시엔 별로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대학생이 된 뒤, 당시에는 7회 이후로는 야구장 입장료를 받지 않아 집에 가는 길 야구장에 들러 친구들과 외야에 앉아 경기는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캔맥주를 마시곤 했다(당시엔 야구장에 주류반입금지였지만, 필자가 어릴 땐 좀 순하게 생겼던 관계로 필자 가방은 한 번도 검사받은 적이 없어 가능했다. 술은 못마시고 ‘이슬’만 마시고 살 것 같은 얼굴이랄까). 이래저래 한국 프로야구에 추억도 많고 애정도 많다.

시간은 흘러흘러 오비 베어스는 두산 베어스가 됐고, 스트라이크-볼 순서의 전광판은 볼-스크라이크 순서로 변했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는 엔씨 다이노스의 양의지 선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양의지 선수는 두산의 대표 포수이자 타자였는데, 2018년 엔씨로 소속을 옮겼다. 두산 선수들과는 한솥밥 먹던 사이에서 이제는 질 수 없는 상대방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내내 양의지 선수는 두산 선수들과 경기 중간중간 웃으며 장난도 치고, 서로 진심으로 격려하는 모습들을 수 차례 보여주었다. 헤어져서 상대방으로 만났는데도 이렇게나 잘 지내다니, 페어플레이 정신의 산 증인이 아닌가 싶다.

양의지 선수는 한국시리즈 내내 역시 대단한 선수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두산의 우승은 양의지 선수의 파이팅만큼 조금씩 멀어져가는 것으로 보여 필자는 마음이 복잡하기도 했다.

엔씨가 우승하고 양의지 선수가 ‘집행검’이라는 엔씨 소프트의 대표 게임 ‘리니지’의 아이템 칼을 들어 올렸을 때, 필자도 양의지 선수와 함께 눈물을 글썽였다. 엔씨로의 이적, 창단 첫 우승, 게다가 상대방은 친정팀 두산 베어스. 아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을 게다.

비록 응원했던 두산 베어스가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팀은 졌지만 잘 싸웠고 상대팀은 우승을 할 충분한 자격이 있는 팀이었다. 결과는 그저 우리 팀이 아주 조금 부족했던 것일 뿐.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나의 팀 그리고 상대방 팀을 응원할 수 있는 마음. 선수들끼리 정규시즌에는 상대방 팀이 되었다가,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또 같이 한 팀이 되어 경기를 하는 것. 문득 이것이 한 편의 인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편이었던 사람이 어느 날 상대편이 되고, 서로 질 수 없는 사이였다가 어느 날은 함께 부둥켜안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사이가 되는 것. 그러면서 삶의 한 시절을 뜨겁게 함께 보내는 것이다.

야구가 끝나니 올해가 정말 다 지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 시즌은 두산의 우승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함께 소리지르며 힘차게 응원하는 경기를 더 기다린다.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모두 함께 즐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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