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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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두흥, 수필가/논설위원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세밑 무렵, 아쉬운 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이뤄놓은 일을 차곡차곡 쌓아 튼튼한 나이테를 이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되돌아보면 뜻대로 이루지 못한 일들이 후회스럽기만 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희망으로 남아 있기에 그나마 감사한 마음으로 위안이 됩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흔들리다가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거나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나이 들면 늙듯, 물건도 오래 쓰면 낡아 상흔이 남습니다. 고목도 언제인가는 제 자리에서 사그라지거나 누군가의 무자비한 톱날에 잘립니다. 허영이나 과욕의 꿈을 꾸다가 이루지 못하면 흔들리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다시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은 사계 순환 과정을 겪으면서 농부는 절기(節氣)에 따라 농사를 짓습니다. 절기는 태양의 황경(黃經)에 맞춰 1년을 15일 간격으로 24등분 해서 계절을 구분한 것입니다. 이달 21일이 동지로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했고, 민간에서는 흔히 ‘작은 설’이라고 했답니다.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 설 다음 작은 설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요즘도 여전히 ‘동지가 지나거나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었다.’ 말합니다.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 해 질병이 발생해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했으며, 눈이 많이 내리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해 옵니다.

올해 초 계획을 세울 때 분수에 알맞은 실천 가능한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삶에서 건강이 먼저입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여름철 농장에 다닐 때 고향마을 버스 정류소에서 내려 농장으로 향해 오르막길을 20여 분 남짓 걸어갑니다. 남들은 건강관리로 산길을 걷는데 나는 그들과 동행하는 기분으로 걷습니다. 하루에 왕복 1만 보는 걷는 편입니다.

2007년 7월 가족 사설 공동묘지 255평을 어승생 아흔아홉 골 한울누리공원 서쪽 200여 m 부근에 사들였습니다. 조부모님 묘소를 먼저 이장하고, 그 뒤 증조부모님의 묘소도 함께 같은 날 모셨습니다. 1990년 과수원 밭에 어머니를 모셨으며 30년이 흘렀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7년 만에 아버지의 비석도 어머니 곁에 모셨었지요. 올해 음력 4월 윤달이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벼르고 있었던 부모님의 묘소를 윤달 4월 초하룻날 옮겼습니다. 자식의 손으로 모시는 것이 도리입니다.

인생길이 서산에 걸리면 모든 것이 허망해 보입니다. 재산 명예 부귀영화도 한 줌의 흙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큰소리치며 살던 사람이나 가난에 시달렸던 이도 늙어 병 들면 남의 도움을 받으며 여명으로 지내게 됩니다. 오늘 좋은 일이 내일까지 이어지길 바라지만 그때뿐입니다. 있다고 자랑 말고 없다고 실망하지 않고 현실에 적응하며 사랑을 베풀고 후회 없는 삶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무리 좋고 나쁜 일도 그 순간 지나면 잊히게 됩니다. 살다 보면 돈 많거나 잘 나거나 많이 배운 사람보다, 마음이 편한 사람이 살갑습니다. 서로 간에 돈보다는 마음을, 잘남보다는 겸손을, 배움보다는 깨달음으로 배려할 줄 알아야 주변이 화평하지 않을까요.

가족이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으니 고마운 경자년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상념에 잠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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