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의 질서
혼돈 속의 질서
  • 제주일보
  • 승인 20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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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주 수필가

인도 바라나시를 간 적이 있다. ‘바라나시를 보지 않았다면 인도를 본 것이 아니다.’는 말이 있을 만큼 그곳은 가장 인도다운 곳으로 손꼽혔다. 십여 명의 순례단과 함께한 여행은 델리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인도다운 분위기가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매캐하고 탁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더니 다양한 향신료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심지어 땅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로 걸을 때마다 숨이 막혔다.

바라나시의 특징 중 하나는 신호등이 없다는 것이다. 교통을 정리하는 경찰관도 없다. 빽빽하게 밀려오는 차량들 사이에서 내가 먼저 가겠다며 경적을 울리는가 하면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혼란이었다. 몇 마리의 소들이 도로 한 가운데로 지나갈 경우엔 상황이 더욱 복잡했다. 하지만 소를 함부로 대하거나 불평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 무질서해 보였지만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내재된 질서가 엄존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아침에 눈을 뜨면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병실과 의료진 수가 턱없이 부족했고 코로나에 감염돼도 집에서 대기하는 상황이었다.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는 와중에 또 다른 확진자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모자란 병실을 구하고 의료진을 모집하는 관련자들의 수고로움, 감사와 든든함이 함께 느껴졌다.

시내를 빠져나오는 데는 몸집이 작은 ‘릭샤’ 나 ‘오토 릭샤’ (인도의 교통수단)가 유용했다. 자전거에서부터 대형 트럭, 관광버스까지 얽히고설킨 도로에서는 ‘릭샤’ 같이 날렵한 교통수단이 인기였다. 손님을 위한 안전모를 기대하는 건 오산이다. 트럭에 매달린 쇠 파이프를 스스로 피하는 게 우선이었으니.

세상의 소리는 삶의 소리다. 살아 보려는 생명의 아우성이다. 코로나라는 질병이 창궐하면서부터 바다 건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나와 먼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한 나라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시대, 전 인류가 책임져야 할 시기다.

‘릭샤’ 운전자는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도시를 빠져나갔다. 다리가 부러지도록 페달을 밟는 그의 등에서 땀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한 가족의 가장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세차게 페달을 밟을 수 있었을까. 오직 앞만 보며 숨 가쁘게 달리는 그의 뒷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나도 모르게 호흡을 크게 하고 폐에 공기를 가득 넣었다. 좀 가벼워졌을까.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사건을 겪은 지 1년이 다 되가는 지금, 어떻게 보면 겨울보다 더 겨울 같은 추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를 처음 접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게 무엇인가. 행동 수칙을 잘 지키며 인내하는 일이었다.

물질을 추구하며 살아 왔지만 정신이라는 자산을 능가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질의 세계보다 정신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지금, 오히려 능동적 자세로의 전환점이지 않을까. 코로나는 야생 동물의 생태계 파괴와 기후 변화의 문제다. 상상과 추상으로만 여겼던 지구의 소멸, 이제 현실임을 자각하는 게 중요하다.

복잡한 도로를 헤쳐 나가던 ‘릭샤’ 운전자는 손님과 가족의 희망을 함께 실었다. 너를 위하는 일이 나를 위하는 일이었다. 혼돈 속에 질서가 있다는 것,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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