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생명은 없다
하찮은 생명은 없다
  • 제주일보
  • 승인 20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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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 수필가

이틀째 큰 눈이 내렸다. 정원의 당유자 나무가 아름답다. 노란색의 커다란 열매들을 매단 채 펄펄 내리는 눈을 당당하게 맞는 모습을 보며 역경을 이겨내는 인간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길고양이들을 위해 몇 개월 전에 사료를 샀다. 새끼를 밴 어미 고양이가 어깨뼈 앙상한 모습으로 먹이 찾아다니는 것을 본 후다. 집 안 나무 밑에 사료 그릇을 놓아두면 어느샌가 와서 먹고 갔다. 어떤 때는 얼룩덜룩한 큰 고양이가 와서 먹고 가기도 했다.

얼마 전 초겨울, 귀엽고 작은 새끼고양이들이 보였다. 눈이 마주치면 자동차 밑에 숨기도 하고 마른 풀 더미로 도망갔다. “아휴, 저 작은 것들을 데리고 어떻게 겨울을 날까.” 적잖이 걱정되었다. 야생동물은 다 적응하게 마련이라고 생각하며 잊으려고도 했다.

눈이 많이 쌓인 어제는 보일러실에 사료가 담긴 그릇을 넣어 놓았다. 이동용 강아지 집에 쓰지 않는 이불을 깔아 놓고 문을 열어놓았다. 밤에라도 따뜻한 곳에서 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눈보라가 치는데 먹이를 찾아왔었는지 몇 시간 뒤에 가서 보니 많이 비어 있다. 다행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아라.’라고 중얼거린다. 온 세상이 눈으로 덮였는데 어디에서 먹이를 찾겠는가. 오들오들 떨던 새끼들이 눈에 선하다.

이렇게 추울 때 노숙자들은 어디에서 추위를 피할까. 언젠가 가게에 들어와 밥과 반찬을 청하던 낯선 사람을 잊을 수 없다. 그가 돈이 아닌 밥을 원하는 것을 보니 정말 배가 고팠던 것 같다. 김치도 있으면 좀 달라고 했다. 나물무침 몇 가지와 김치, 밥을 함께 내주었다. 얼마나 허기가 졌으면 사내가 아침부터 체면도 없이 그럴까 싶어 말없이 있는 밥을 모두 떠 주었다.

생명은 귀하다. 삼라만상 세상의 목숨 붙은 모든 게 귀하다. 비 온 후 뙤약볕 아래를 체액으로 유서를 남기며 기어가는 지렁이를 볼 때, 태풍 부는 날 해초와 함께 떠밀려온 작은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가늘게 떠는 것을 볼 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생명력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다.

하물며 열매도 인간이 돌봐주지 않는 야생의 것은 껍질을 두껍게 입고 세찬 바람과 눈비를 견디지 않는가. 생명 있는 것 치고 고난 없는 것은 없다고 했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우주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에너지의 흐름처럼 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이 말은 보편적인 인간에게만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낳은 자식을 학대하다 숨지게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예 버리는 부모도 있다. 딸을 성폭행하는 친부도 있다. 영묘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라는 사전적 뜻과는 맞지 않는 이들이다.

먹고 살기 위한 사냥이 아닌 단지 즐거움을 위해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멸종 위기의 동물을 사냥해 인증 사진을 찍는 행위 등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용납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지구상의 생물은 인간의 것만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 등 많은 것이 인간이 만든 재앙임을 자각해야 한다. 사물에 따뜻한 시선을 주고 되살리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만물의 영장은 다른 생명체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권리가 있으면 책임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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