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를 벗다
돋보기를 벗다
  • 제주일보
  • 승인 20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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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여생 수필가

십여 년을 정리한다, 침대 머리맡, 컴퓨터 책상, 외출용 가방, 반짇고리의. 돋보기 찾아다니는 게 불편해 사들이다 보니 무려 네 개가 됐다. 소중한 나의 분신이었기도 하지만,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 안경집에 넣어 서랍 안으로 밀어 보관한다.

언제부터인가 안개 낀 듯 사물이 흐려 보이고 컴퓨터에 집중해 작업하다 보면 두통이 오기 시작한다. 눈 영양제며 온열 안대를 사용해도 별반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다. 황반변성으로 실명 위기에 처한 이웃을 보고 다급한 마음에 안과를 찾았다.

백내장이란다. 수정체에 단백질이 쌓여 시야가 흐려지는 노인성 질환이다. 백내장이라는 진단에 그동안 눈 관리를 소홀히 했나 하는 자책감에 무심결 풀죽은 표정이 지어진다. 언제 내 기분을 읽었는지, 요즘은 주변 환경의 변화로 컴퓨터와 휴대폰 사용이 많은 30~40대에서도 흔히 생긴다는 의사의 말에 그나마 위로가 된다.

수술을 결정하고 나니 기다렸던 듯 검진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단초점과 다초점 렌즈 선택에 잠시 고민도 했지만, 보험처리가 가능하다 하여 다초점 렌즈로 정한다. 수술은 생각보다 간단하였고 한 달이 지난 지금은 그런대로 만족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의 불편함은 삶의 질마저 떨어뜨린다.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눈에 담고 싶지만 감으로만 느낄 때가 있었다. 눈 건강을 잃고 나서야 그동안의 고마움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교묘하게 교차한다. 짬이 날 때마다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고, 어느 때는 종일 컴퓨터에 매달려 눈을 혹사한 적도 다반사였다.

건강할 때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침침한 증상이 나타나서야 영양제며 식이 요법을 넘나들며 서둘렀던 것 같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당근 주스를 마셔도 이미 눈의 노화가 진행돼 별 효과가 없지 않았나 싶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 게 맞다. 병원 가보면 온 국민이 환자 같다. 수술 당일 보호자로 같이 갔던 딸이 대기 중인 환자들은 보고, 내일부터 당장 눈 영양제를 복용하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야말로 병원은 환자들로 북새통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눈이 피로한데다 집중도 안 된다. 그러다 보니 두통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았다. 건강은 한 번 잃게 되면 회복하기 쉽지 않다지만, 안과 수술로 밝은 눈을 되찾게 돼 그나마 다행이다.

눈은 생명의 빛이기에 지키고 싶다. 지금부터라도 야외 운동으로 들녘의 초록 풍경을 담으며 휴식을 주려 한다. 초록빛이 눈 건강에 좋아서만은 아니다. 적당한 바깥 활동으로 몸의 긴장도 풀고, 햇볕을 쬐며 면역력을 높이고 싶어 서이다. 면역력이 곧 종합 백신이 되기 때문이다.

봄을 맞으려 월랑봉 둘레길, 바람의 길을 걷고 있다. 그곳에는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 언 땅을 비집은 봄까치풀꽃의 반가운 봄 마중이 있다. 왁자지껄 새순이 움트는 소리가 있다. 코로나19로 몸도 마음도 추웠던 겨울이었지만, 움츠렸던 마음에 봄의 기운을 담으니 상쾌하다. 건강한 느낌이 좋고, 맑은 시야가 좋다. 오랜 시간 같이했던 돋보기를 벗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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