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선수
김연경 선수
  • 제주일보
  • 승인 202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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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집콕에다 건강이 썩 좋잖아 죽치고 앉아 글 몇 줄 쓰는 게 일과가 됐다. 무리한 운동을 삼가야 하니 하릴없는 일이다. 글 쓴다고 무슨 대작에 매달리는 것도 아니라, 갈수록 삶이 단조롭다.

궁리 끝에 TV 스포츠 채널에서 답을 찾았다. 2020-2021 배구 V-리그를 내보내고 있었다. 보노라니 배구에 끌려갔다. 남자배구는 전투적이어서 거의 한 방으로 속전속결인데, 여자배구는 랠리가 이어지는 아기자기함이 알맞은 자극으로 와 선호하게 됐다.

프로 다섯 팀 경쟁이 치열한데, 그중 흥국생명이 단연 막강해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고 있었다. 탁월한 배구를 구사하고 있었다. 시합을 볼 때마다 압도적 실력의 한 선수에게 눈이 꽂혀 갔다.

흥국생명의 주장 김연경 선수. 해외에서 최고 연봉을 받으며 활동하다 11년 만에 귀국을 결심해 친정팀에 복귀한 선수다. 192m의 장신이 뿜어대는 강력한 화력만 아니라 수비력까지 수준이 달랐다. 후위에서 리시브한 볼이 세터에게 연결되면서 상대에 타격을 줄 수 있게 공간과 타이밍을 확보하는 효율적 볼 배급이 눈길을 끈다. 나는 배구를 모르지만 안정된 리시브가 조직력에 합세함으로 공격의 힘이 살아나야 하는 게 배구의 요체일 것이다. 김연경 선수가 그 중심에서 팀의 에너지를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과연 어우흥이구나, 그 힘의 근원이 어디며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그는 실력만 좋은 게 아니다. 선수들을 다독이며 분위기를 띄우는가 하면, 극적인 득점에 성공할 때 코트가 좁다고 휘저으며 포효하는 그 통쾌한 몸짓. 우리 배구에 저런 기인(奇人)이 존재하고 있구나 했다. 김연경이 배구의 흥행을 이끌면서 한국배구가 점프했다더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평균 시청률 1.18로 야구의 0.8을 단연 압도한다잖는가.

한데 얼마 전 ‘학폭’으로 배구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폭발성이 강한 사건이었다. 팀의 주전 레프트와 세터, 쌍둥이 이재영·다영 자매가 중학 시절 폭력 가해자로 드러나면서 급기야 팀에서 이탈해 출전 금지에다 국가대표 자격까지 박탈당했다. 두 주전 스타의 빈자리는 컸다. 흥국생명은 최근 경기에서 내리 4연패, 특히 최근엔 최저득점에 최단 시간의 세트 종료라는, 전에 없던 수모를 겪었다. 배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다. 걸출한 김연경 선수가 코트에서 분위기를 바꾸려 아무리 파이팅을 외쳐도 별무효과였다.

올림픽을 위해 거액 연봉도 포기하고 돌아온 김연경. 올림픽 출전권을 따오는 데 호흡을 맞춰 온 그에게 쌍둥이 자매와의 결별은 너무 가혹한 형벌이다. 선수로서 마지막이라 여기며 올림픽만 바라보고 돌아온 그. 지금 얼마나 허탈할 것인가.

파도 파도 미담뿐이라는 김연경 선수. 36년 만에 국가대표팀을 4강 신화로 이끌면서 득정왕과 MVP에 오르는 등 국위를 선양했던 그는, 이제 연패의 수렁에 빠진 팀을 떠안아 허우적거린다.

그 앞에 기적이 일어났다. 연패의 사슬을 끊고 반등에 성공했다. 악재 속 예상치 못한 승리였다. 감격의 순간, 눈시울을 붉히며 잃었던 웃음을 되찾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경기 전, 인터넷을 통해 흔들리는 선수들을 격려하며 훈련하는 걸 보았다. 한 선수의 힘이 얻어 낸 값진 1승이었다.

그의 힘이 올림픽 메달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응원한다. 김연경 선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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