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라는 돈키호테를 사랑한 둘시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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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도 체 게바라(1928-1967)를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쿠바 혁명을 성공시키고 혁명 정부의 2인자로 쿠바 중앙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을 지낸 체 게바라가 1965년 4월 "나는 정치가가 아니라 혁명가이다. 쿠바에서 내가 할 일은 모두 끝났다"라는 편지를 남기고 사라지면서 '체(Che)'의 진정한 신화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1965년 아프리카 콩고를 거쳐 1967년 볼리비아에서 게릴라로 활동하다 미국이 지휘하는 반군추격대에 체포돼 총살된 체 게바라의 사생활을 두번째 아내 알레이다 마치가 털어놓은 책 '체, 회상'(원제 Che, Evocacion.랜덤하우스 펴냄)은 이런 의문 때문에 더 그 내용이 궁금하다.

알레이다 마치는 혁명전투에서 체 게바라의 비서로 일하다 사랑에 빠져 1959년 결혼, 체 게바라가 죽을 때까지 8년을 함께하며 알레이다, 카밀로, 셀리아, 에르네스토 등 2남2녀를 뒀다.

체 게바라 사후 40년을 침묵하던 알레이다 마치는 첫 회고록인 이 책에서 체 게바라가 죽음에 이르게된 볼리비아행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피델 카스트로와의 불화 때문이 아니라 카스트로의 은밀한 지원을 받아 주도면밀하게 이뤄진 것이라고 증언한다.

그러나 행간을 읽어야만 눈치챌 수 있는 정치적 문제는 이 책의 초점이 아니다. 혁명에 성공한 후에도 게릴라 생활을 자청한 체 게바라의 삶, 늘 죽음을 염두에 두면서 험난한 길을 걸어간 한 혁명가의 고뇌,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 등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책의 핵심이다.

알레이다 마치는 체 게바라가 1959년부터 해외여행에 아내를 동반할 것을 권한 카스트로의 제의를 거부했다며 "그런 개인적인 기쁨을 포기하는 것이 그의 본질적인 성격이었다"고 회상한다.

또 "세계 여러 다른 곳에서 쿠바로 모여드는 해방운동에 대해 알게 되고 개입하면서 자신의 결심을 다져가고 있었다. 귀중한 많은 사람들이 싸우며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경험많은 군인들의 실질적인 참여만이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그는 그가 말했듯이 목숨을 걸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체 게바라는 차가운 혁명투사였지만 한 남자로서 아내에게는 그리움과 외로움을 숨기지 않았다.

"가까이에 적도 없고 눈앞에 꼴 보기 싫은 자들도 없이 갇혀 있는 지금 너무도 아프게 당신이 필요하오. 생리적으로도 그렇다오. 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일리치가 늘 그것들을 진정시켜주는 것은 아니라오"
콩고 내전 참전 후 볼리비아로 숨어들어가기 직전인 1966년 아바나의 안가에서 60대 노인으로 변장해 아이들을 만나는 장면도 가슴 시리다.

아빠의 친구 '라몬'이라고 자신을 속인 게바라가 뛰다가 넘어진 큰 딸 알레이다를 부드럽게 대해주자 알레이다는 엄마에게 "엄마, 이 남자가 내게 반했나 봐"라고 속삭이고, 그 소리를 체 게바라도 듣고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장면이다.

네 아이를 키워낸 알레이다 마치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은 돈키호테의 사랑을 받은 둘시네아 또는 돈키호테를 수행한 산초판사다.

"어떤 때는 나를 둘시네아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산초판사라고 생각했다. 그 두 인물은 모두 내 삶의 동반자였던 현대판 돈키호테를 따르고자 한 인물이었다. 그는 세르반테스의 인물에 부드러움이 가미된 인물이었고, 비록 다른 상황이긴 해도 같은 목적을 위해 새로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체 게바라 탄생 80주년을 맞아 알레이다 마치가 최초로 낸 회고록이다. 그녀가 공개한 사진, 엽서, 시와 편지 등이 체 게바라의 매력적인 혁명가 이미지를 강화한다. 스페인판보다 앞서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출간됐다.

박채연 옮김. 324쪽. 1만2천원.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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