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그림은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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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작자 에릭헵번이 자서전을 통해 '어느쪽이 진짜일까 맞춰보라'며 제시한 코로의 소묘(왼쪽)와 흉내내 그린 자신의 소묘, 사진은 한길아트 제공.
 "19세기 프랑스의 화가인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가 소년을 그린 진짜 소묘는 어느 쪽일까."
전설적인 위작자 중 한 명인 영국의 에릭 헵번(1934-1996)은 1991년 펴낸 자서전 '곤경에 빠져서'에서 미술품 감정가 등을 조롱하듯이 코로의 소묘와 자신의 소묘를 나란히 제시하며 이런 퀴즈를 냈다.

헵번은 1963년부터 1978년까지 루벤스, 반다이크 등을 흉내 낸 회화 작품과 조각품 500여점을 만들어 유명 경매사와 미술관 등에 유통시킨 위작자로, 자신의 대규모 위작 사실이 들통난뒤 "위작 유통의 책임은 감정 전문가들과 화상에게 있다"며 도발적인 논리를 제기했다.

"가짜 작품은 없다. 가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미술품에 붙은 라벨일 뿐이고 정작 필요한 일은 올바른 라벨을 붙일 수 있도록 전문가들을 교육하는 일이다"라는 주장이다.

국내에서 최근 박수근이나 이중섭을 둘러싼 위작 논란이 수차례 제기됐듯이 위작 문제는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엄연한 역사다.

영국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은 위작 전시실을 마련해놓고 있는데 이곳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품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조반니 바스티아니니(1830-1868)의 위작품 등이 전시돼 있다고 한다.

위작의 역사를 보면 소송 등에 휘말린 위작자가 자신의 위조품에 대해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감정가 등 미술 전문가들을 상대로 자신의 위작 능력을 증명하려고 소동을 벌인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네덜란드의 위작자 판 메이헤런(1889-1948)이 그런 예다.

2차 세계대전후 연합군은 독일 나치 정권이 보관하고 있던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라는 작품을 발견했는데 네덜란드는 그림의 첫 출처가 메이헤런인 것을 확인하고 1945년 그를 나치 협력죄로 체포했다.
메이헤런은 발뺌을 하다가 결국 자신이 베르메르를 흉내내 여러 작품을 만들었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사법 당국은 그가 나치 협력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 한다고 의심했고 미술관도 그의 위작에 대해 진품이라는 주장을 펴 메이헤런은 '누명아닌 누명'을 벗기 위해 옥중에서 2개월만에 대형 위작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10만달러에 팔린 조각 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위작자 알체오 도세나(1878-1937)는 유통업자들에게 화가 나 위작 사실을 고백했으나 전문가들이 믿지 않자 이를 증명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하기도 해다.

위작자들이 영화 소재가 된 일은 또 있다.

위작 규모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엘미르 드 호리, 페르낭 르그로, 레알 르사르 등 3명의 동업자와 관련된 얘기로, 오손 웰스에 의해 '거짓과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이들은 1961-1967년 피카소, 마티스, 모딜리아니 등 위작 판매로 6천만달러를 벌었을 정도로 위작 규모가 컸다.
드가, 모딜리아니, 렘브란트 등 121명을 흉내 낸 가짜 작품 2천점을 만든 영국인 톰 키팅(1917-1984)의 경우는 돈만 따지는 화상 등 미술계에 복수한다는 생각으로 본격적인 위작에 나섰지만 물감을 칠하기 전 자신의 위작 밑바탕에 아예 '가짜'라고 써놓는 등 '양심범(?)'으로 통하는 위작자다.
그는 1976년 꼬리가 잡히자 기자회견까지 하고 '커밍아웃'해 방송 프로그램의 그림 해설사로 나설만큼 유명세를 탔고 양지의 화가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이밖에 반 고흐의 위작을 유통시킨 오토바커(1898-1970) 등 위작의 사례는 부지기수다.

위작과 함께 미술사를 장식하는 음지의 역사는 도난이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걸려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1911년 도둑맞았다가 2년뒤 돌아오게 되는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더욱 주목받는 그림이 됐다고 하며 뭉크의 '절규' 등 도난의 흔적이 남은 유명 작품은 한둘이 아니다.

국내의 경우도 오지호 화백의 그림 '항구'가 모교인 전남의 한 초등학교에 걸려있다가 1986년 도난돼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며, 1990년에는 힐튼호텔 로비에 걸린 김흥수의 '나부좌상'을 훔친 범인이 화랑에 작품을 팔려다가 수포로 돌아간 일도 있었다.

이연식이 쓴 '위작과 도난의 미술사'는 미술사의 음지 영역이라 할수 있는 위작과 도난에 대해 이처럼 풍성한 얘깃거리를 담고있는 책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경매가 미술의 신화적인 권위를 만방에 과시하고 그런 권위를 공고히 하는 기제라면 위작과 도난은 권위를 뒤흔드는 장치"라며 "불운에 대한 기록이지만 미술품과 미술계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바라볼수 있게 한다"고 저술 동기를 설명했다.

한길아트. 344쪽. 1만5천원. (서울=연합뉴스) 경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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