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쉰들러리스트' 주인공이 남긴 한국전쟁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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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초기 1950년 고(故) 브레이즈델(오른쪽 아래) 군목이 서울에 남아 있던 전쟁 고아들을 C-54 수송기에 태워 제주도로 피신시킨 후 비행기에서 아이들을 내리고 있다.<<광주 충현원 제공>>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 故 러셀 브레이즈델 목사 
6.25전쟁 초기 1950년 고(故) 브레이즈델(오른쪽 아래) 군목이 서울에 남아 있던 전쟁 6.25전쟁 당시 서울에 남아있던 전쟁고아 1천여명을 피신시킨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고(故) 러셀 브레이즈델(Rusell Blaisdell) 목사의 회고록에는 긴박했던 그 날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950년 10월7일 유엔총회는 연합군의 38선 이북 진격을 승인, 연합군은 한반도 통일을 위해 38선을 넘어 북한의 수도인 평양으로 진격했고 당시 러셀 목사는 제5 공군부대에 근무하면서 서울에 있는 고아수용센터에서 1천여명의 고아들을 돌봤다.

하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같은해 11월20일 중공군과 북한군의 서울 침공이 임박하면서 대부분의 시민들과 군인들은 철수했고 러셀 목사는 고아들과 서울에 남게 된다.

그는 "나는 공무원들이 아이들을 맡아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고아들을 책임지라는 지시를 받은 일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아이들을 지킬 사람은 나뿐이었다"며 그 날의 기억을 전했다.

같은해 12월 러셀 목사는 북한군의 침공을 피해 아이들을 인천항에서 한국 국적의 배에 태워 제주도로 옮기기로 결정했고 트럭으로 1천여명의 아이들을 인천항으로 옮겼다.

간신히 아이들을 인천항으로 데려왔지만 이들을 태울 배가 1천여명이 모두 탈 수 없는 상태임을 깨달은 러셀 목사는 절망에 빠진다.

그때 기적이 일어나 서울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공군장료 T.C. 로져스 대령을 만나게됐고 그가 준비해 준 화물수송기로 12월20일 드디어 아이들을 안전하게 제주도로 피신시킬 수 있었다.

그는 전쟁 이후 2001년 서울을 방문해 한국보육원 황온순 원장 등 이제 성인이 돼 가족과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이 구한 12명의 고아들을 만났고 경희대에서 명예학사 학위를 받는 등 한국에서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고 회고록에서 전했다.

러셀 목사는 회고록 말미에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형제로 여겨 평화와 연대감을 이 세상에 가져다줘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러셀 목사의 회고록 한국판은 고인이 생전에 남긴 "충현원을 돕고싶다"는 유지에 따라 광주 사회복지법인 충현원(忠峴院)에서 출판하게 됐으며 1일 오전 남구 양림동 충현원에서는 러셀 목사에 대한 추모 예배, 출판기념식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광주=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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