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거석 문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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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고 죽는 것이 불확실한 존재이기에 영원과 불멸을 갈망했다. 거석은 인간 공통의 사회적, 정치적 염원을 나타내며 변하지 않는 기념물을 세우고자 하는 뿌리깊은 인간의 욕구가 표출된 상징물이다.

거석은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면서 나타났다. 처음으로 먹을 것이 남아돌고 여유시간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건축과 예술, 공학에 눈뜨고 힘을 모아 돌을 세웠다. 석기시대 사람들이 남긴 거석은 이들이 지적이고 창조적이었으며 식견이 깊었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했다는 것을 웅변한다.

거석은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대서양 연안에서 나타난다. 지중해에서는 시칠리아, 코르시카, 발레아레스 제도에도 남아있다.

유럽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동쪽에는 돌로 지은 주거지가 보이고 한국에는 고인돌이, 폴리네시아에는 고분이, 이스터섬에는 석상이, 아메리카에서는 마야와 아스텍문명이 남긴 거석들이 발견됐다.

영국 작가이자 여행가인 피터 마셜은 유럽의 거석 문화를 돌아보기 위해 고대 뱃사람들이 쓰던 가죽배와 비슷한 크기 7m에 4노트 정도 속도를 내는 배를 마련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가 있는 스코틀랜드 스카라브레에서 출발한 배는 아일랜드, 웨일스, 잉글랜드,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을 거쳐 지중해의 시칠리아, 몰타섬까지 7개월간 4천해리를 항해했다.

영국 남부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스톤 헨지의 돌이 웨일스 남서부 밀퍼드헤이번에서 난 청석(휘록암)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을 근거로 거석인들이 밀퍼드헤이번에서 청석 23개를 운반하는 경로였을 가능성이 있는 해로를 따라가 본다.

스톤 헨지의 돌 중 큰 것은 높이가 7m, 무게가 45t 인데 스톤 헨지가 건설된 기원전 3천년-기원전 1천600년 사이에 이런 육중한 덩어리를 어떻게 운반했는지는 인류에게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기원전 1천500년께 스톤 헨지가 버림을 받은 것은 때마침 시작된 청동기 문명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 1천년 후에 그 곳을 점령한 드루이드교도의 샤머니즘적인 전통과는 어떤 연결고리를 갖는지도 여전히 의문에 싸여있다.

스톤 헨지는 종교적인 용도 뿐만 아니라 거대하고 정교한 달 천문대였다거나, 태양과 달을 관측하던 거대한 신석기 시대의 컴퓨터라는 추측 등 과학적으로도 무한한 연구 과제를 던지고 있다.

스톤 헨지보다 1천년 이상 앞서 기원전 4천300년에서 3천800년 사이에 만들어진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 카르나크의 르 그랑드 메니르브리제 거석은 지금은 4조각으로 쪼개졌지만 높이 20m, 4조각을 합한 무게는 280t에 달한다.

피터 마셜은 거석 탐험기를 정리한 책 '유럽의 잃어버린 문명'(역사의아침 펴냄)에서 거석 유적지의 장관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인류가 늘 궁금해했으나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미스터리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거석 유적들을 통해 죽은 자를 공경하고 삶을 사랑하고 신을 숭배한 고대인의 겸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손희승 옮김. 416쪽. 1만5천원.(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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